고양이
- 작성자
- 큰아들
- 등록일
- 2012-04-06 05:37:21
- 조회수
- 2,878
김원영 상경과 중대장님이 순시(순찰)를 나갔다가 종피로(아들내미 근무하는데) 새끼 고양이 한마리를 주워왔다. 원래 경복궁 안에는 도둑 고양이가 몇 마리 있지만 이 녀석은 그 놈들과는 조금 다르다. 원래 궁 안에 사는 도둑 고양이 녀석들은 전부 흰 바탕에 주황색 얼룩을 가지고 있는데 이 녀석은 흰 바탕에 검은 무늬였다. 아직 새끼다. 목에 목줄을 하고 있는 것을 보니 누군가가 경복궁에 관람을 와서 잃어버렸거나, 버렸거나 한 것 같다. 녀석은 한쪽 눈동자만 초록색이다. 이 눈동자를 앞에 두고는 손을 아무리 왔다갔다해도 반응이 없다.
녀석은 고양이가 아니라 꼭 개 같았다. 2소대장님이 근무지 순시를 도는데 소대장님을 따라 경복궁 한바퀴를 다 따라다녔다. 종피에서 키우면 좋겠다는 의견이 나왔지만 성사되지는 않았다. 순시관이 나와서 꼬투리를 잡을 수도 있고, 동물의 대소변을 받아내고 치우는 것도 일이기 때문이다. 결국 소대장님이 녀석을 집옥재(건물 이름이유) 뒤편 어디에다가 버리고 왔는데 고양이는 거기에서도 한 이틀 동안 근무자들의 뒤를 졸졸 따라 다녔다. 몇 일이 지나자 이번에는 누군가가 녀석을 영추문(경복궁의 문 중 하나) 앞에 갔다 버렸는지, 고양이는 영추문에서 우리 근무자와 경복궁 관리 사무소 아저씨들의 뒷꽁무니를 따라다니고 있었다. 나는 그 모습을 CCTV를 통해 볼 수 있었다. 이 고양이는 쉽게 바깥 생활에 적응할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다.
나는 김혜지(파리로유학간다는대학친구녀석)에게 혹시라도 녀석을 키워줄 수 있는지 물어보았다. 혜지는 내 친구 중 유일하게 고양이를 키우는 애다. 혜지는 키우던 고양이들이 새끼를 낳아 지금 자기가 맡고 있는 고양이가 8마리나 되고, 곧 유학을 가야하기 때문에 고양이를 돌보아 줄 수 없을 것 같다고 말했다. 대신 고양이를 키워 줄 만한 사람들이 많이 있는 카페를 알려주고 거기에 글을 올려보라고 했는데 나는 군인 신분에 일을 벌이기가 심난해서 글을 올리지 않았다.
1부관님은 시청과 동물보호단체 몇 곳에 전화를 해보았다. 전화를 받은 사람들은 모두 고양이를 데려갈 수 없다고 했다. 개는 되지만, 고양이는 안된다는 것이다. 도둑고양이가 아니라 집고양이처럼 보여도 안된다고 했다. 아마 도둑고양이와 집 고양이를 구별할 뚜렷한 방법이 없어서 그러는 것 같았다. 대체 개와 고양이의 차이는 무어고 또 집 고양이와 도둑고양이의 차이는 무얼까. 고양이는 이주동안을 경복궁 안을 헤메면서 살았다.
어느날 윤석이와 함께(요즘 근무 같이 뛰는, 울학교 바로옆에 있는 중앙대에 다니는 고집센 후임녀석) 야간 근무를 뛰러 투입하던 길이다. 나는 종피에서 라면과 같이 끓여 먹으려고 엄마가 보내준 햄을 가방에 넣어 가지고 가고 있었다. 영추문 앞에 추운 듯 구석에 쭈그리고 앉아있는 녀석이 보였다. 나는 잠깐 허리를 굽혀 녀석의 등을 쓰다듬어 주었다. 움직이는 손에 맞추어 녀석의 등가죽이 같이 움직였다. 가죽 아래로 척추와 갈비뼈가 만져졌다.
나는 종피에 올라와 2소대장님께 종피에서 고양이를 키우면 좋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안에서는 아니더라도 뒷마당에서 키우면 되지 않느냐, 밥이야 도시락 반찬 먹다가 남은걸 줘도 되고 빵과 우유 간식 나오는 것들을조금 남겨 줘도 되고... 소대장님은 자기도 그러면 좋겠다고 생각하고는 있지만 모든 직원들의 의견이 맞아야 하는 일인데 고양이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도 있어서 말을 꺼내기가 힘들다고 했다.
소대장님은 아무래도 오늘은 고양이를 종피 안에서 재워야겠다고, 그러고 싶다고 하시더니 윤석이와 함께 고양이를 찾으러 나갔다. 나는 그 사이 야식으로 먹을 라며을 끓였다. 햄을 라면에 다 때려박으려다가 고양이가 라면에 든 햄은 싫어할 수도 있을 것 같아서 절반쯤은 그대로 남겨두었다.
라면이 다 되고, 나는 영추문 근무자에게 아직도 고양이가 영추문 앞에 있느냐고 무전을 쳤다. 영추문 근무자는 확인해보더니 방금 전까지만 해도 있었는데 갑자기 사라졌다고 말했다. CCTV로 소대장님과 윤석이가 영추문에 도착해서 고양이를 찾는 모습이 보였다. 고양이는 어디로 사라졌는지 찾을 수가 없었다.
라면은 자꾸만 불었다. 소대장님과 윤석이는 일단 찾는 것을 포기하고 종피로 올라와 불어터진 라면을 먹었다. 나는 라면을 다 먹고나서 다시 한 번 영추문 근무자에게 고양이가 없냐고 물어보았다. 영추문 근무자는 방금 전에 경회루 쪽으로 가는 것을 보았다고 했다. 소대장님과 윤석이가 다시 영추문으로 자전거를 타고 달려갔다. 일대를 샅샅이 뒤졌다. 영추문과 태원전, 근정전과 고궁일대... 건물들의 아궁이 안쪽까지도. 나도 밤이라 잘 보이지 않는 CCTV를 돌려가며 고양이를 찾았다. 그러나 한 시간을 넘게 찾아도 고양이는 나오지 않았다. 소대장님과 윤석이는 고양이를 데려오려고 가지고 간 가방을 덜렁거리며 그냥 들고 돌아왔다. 나는 남은 햄을 냉장고에 넣어두었다. 나중에라도 고양이가 나타나면 먹일 수 있게.
다음날, 다시 종피에 와서 냉장고를 열어보니 그 사이 누군가가 햄을 먹었는지 냉장고는 비어 있었다. 몇 일 후에 고양이가 다시 발견되었다는 소리가 언뜻 들렸다. 이번에는 그 고양이를 잡아서 영추문 반대편, 경복궁 관리 사무소 앞 어딘가에 버려두었다고 했다. 그 이후로는 아무도 고양이를 보지 못했다. 녀석이 어디로 사라졌는지는 알 길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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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일담으로, 남은 햄은 다른 후임 녀석이 다 먹어치웠다네요... -_-
지금은 밤 샘 근무이고 내일은 날 새고 남산에 있다는 야외 수목원으로 혼자서 놀러 갈 생각입니다. 소설 쓰는데 글로 수목원 스케치도 좀 남길 겸, 꽃 구경도 할겸 겸사겸사... 아직 꽃도 덜폈고 날새고 가면 피곤해서 잘될지는 모르겠지만... 근무 투입철수 하다보면 그래도 산수유 같은 것들은 벌써 펴서 노란꽃이 이쁘네요.
아들은 요즘 사진에 관심이 생겨서 DSLR이나 미러리스 카메라 하나 사고 싶은데 군인 월급 모아서 이걸 사는 것은 불가능...-_-
얼른 도시에서 내려와서 시골서 사는게 낫겠다 싶은데 벌은 쏘이면 아프고, 색시감은 서울에서 구해가야겠고.. 여하튼 24살씩이나 먹어서 복학해서 집에서 돈 타서 학교 다닐 생각하면 갑갑, 세 평 짜리 방에서 또 살 일을 생각하면 갑갑 갑갑갑갑갑갑... 수천년동안이나 문명이 발전에 발전을 이룩해왔는데 아직도 의식주를 제대로 해결 못하고 사는 인간들이 대다수라니..그리고 발전된 도시 서울에서 나도 그러고 있으니 이 것 참.
날이 밝아오는 아침입니다.
댓글목록
벌집아씨님의 댓글
영섭이가 기숙사 들어가면서 형아오면 주라고 지 핸드폰 집에 두고 갔다.
바람이 많이불고 기온차가 심하니 감기 안걸리게 조심하고 감기기 있으면 얼른 프로폴리스 먹는것 잊지말고 학생신분이 끝나는 날까지는 부모한테 기댈수밖에 없는것이니 갑갑하다 생각말아라. 그런때가 있으면 너희들이 부모한테 용돈주는 날도 있겠지~~
운영자님의 댓글
붓는건 나중에 면역이 되니 괜찮은데 두드러기는 안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