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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하식당 > 자유게시판

청하식당

작성자
아들
등록일
2012-06-16 03:39:33
조회수
2,086
청하식당 청하식당은 부대 근처에 있는 가정식 백반집 중 하나다. 다리를 절룩거리는 할머니가 운영하고 있는 이 식당은 계란찜 맛이 일품이다. 식탁 위에는 그 날이나 그 전 날의 스포츠 신문이 놓여 있다. 할머니가 보는 것은 아닐테니 손님들에게 읽으라고 시키고 있는 것일테다. 나는 가끔씩 혼자 청하식당에 들어와 밥을 먹는다. 밥 식탁을 둘러싼 나의 고민과 싸움은 오래되었다. 엄마의 작은 젖꼭지를 붙잡고 쪽쪽 빨았을때부터 밥과 관련된 내 나름대로의 생각이 있었을테지만 본격적인 시작은 아마 고등학교 때부터이지 않을까. 나는 고등학교 삼 년 동안을 기숙사에 살았고, 매일 삼시 세끼를 급식으로 때워야했다. 그 놈의 급식을, 아마 처음에는 맛있게 먹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몇 달 지나지 않아 질려버렸다. 영양사가 아무리 머리를 굴려서 식단을 짜도 한정된 식비에서 나올 수 있는 메뉴가 결국 거기서 거기였던 것이다. 밥과 국, 깍두기나 배추 김치에 김이나 나물 한 가지, 거기에 고기나 소시지정도. 이 구성을 벗어날 수가 없는 것이다. 밖에서라면 좋아하는 음식은 좀 많이 먹고, 싫어하는 음식은 덜 먹을텐데 급식은 그런 선택이 가능한 것도 아니다. 뭐 여튼 이건 어쩔 수 없는 문제다. 골고루 먹어야 건강해지니까. 그치만 음식의 질이 문제였다. 다시마와 버섯으로 국물을 내고, 두부와 고추를 썰어 넣고, 조개를 넣어 뚝배기에 정성스럽게 담아 낸 된장국이 있는가 하면 유부와 파쪼가리 몇 개가 둥둥 떠서 냉냉하게 식어 있는 미소 된장국도 있다. 미소 된장국도 과연 국인가? 왜 급식은 그 놈의 미소 된장국만 주는 걸까? 나는 똑같은 식판에 매일 수백명이나 되는 아이들이 동일한 환경에서 동일한 영양 성분을 섭취하는 급식이 싫어졌다. 초등학교 때부터 이렇게 먹어온 급식이 수천끼는 되리라. 삼시세끼를 급식으로 해결하는 환경에서 급식을 싫어하게 되면서 나는 점차 말라갔다. 밥상과의 싸움은 아주 피곤했다. 사람과 감정 다툼을 하거나 치고 박는 것과는 전혀 다른 성질의 것이다. 오 하나님, 먹으면 살고, 아니면 죽을 것이다. 이놈을 먹기는 싫은데 살려면 먹긴 먹어야 한다. 육십 년대에 자란 어른들이 보면 요즘 애새끼들은 다 배가 불렀다고 할 것이나……. 한 번은 ‘음식혁명’이라는 책을 읽었다. 채식의 우월성과 육식의 야만성(고기를 먹어서 야만적인게 아니라 고기를 기르는 그 방식이 야만적인 것이고, 고기를 키울 때 드는 곡류와 채소를 기아에 허덕이는 사람들에게 베푼다면 지구상에 밥을 못 먹어 죽는 사람들은 대부분 사라질 것임을 나는 이 책을 통해 배웠다.)을 주장하는 책이었다. 그 책을 읽고 나는 채식주의자가 되어야겠다고 다짐했다. 그리고 채 열흘도 되지 않아 포기하고 말았다. 급식실에서 온전한 채식을 완성하려면 밥과 김치만 먹고 살아야했던 것이다. 먹는 일에 관해서라면 사상이고 신념이고 의지고 뭐고 필요가 없었다. 영양사 누나에게 “나는 이제부터 채식주의자가 되기로 결심했으니 내가 내는 급식비로는 김정우 전용 채식 식단을 짜주세요.”하고 말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대학 시절도 비슷했다. 요리는 사치였다. 요리는‘주방’이 있어야 할 수 있었다. 그나마 고등학교 때보다 더 나아진 건, 적어도 대학에선 내 나름대로 메뉴를 골라 밥을 사 먹을 수 있었다! (사 먹어야만했다.) 급식에 비하면 얼마나 큰 발전인가, 대학에 오고 나서는 쓰레기 같은 급식을 먹는 대신에 다른 쓰레기 같은 식당 A와 B, C 사이에서 선택권을 얻은 것이다. 싸구려가 아닌 음식을 제공하는 식당을 매일 들락거리는 일은 학생 용돈으로는 무리였고, 혼자서 그런 식당을 찾아가 밥을 챙겨 먹는 것도 힘들었다. 대학 친구들아, 절대 나는 어린 아이의 입맛을 가진게 아니란다. 아무리 먹어도 엄마가 바특하게 끓여낸 된장찌개 맛이 안 나는 분식집 된장찌개보다는 그냥 치킨 쪽이 나았을 뿐. 스포츠 신문을 뒤적거리는데, 아주머니가 절룩거리며 계란찜을 가지고 나온다. 군대에서도 바뀌는 건 없다. 여기서 먹는 급식은 한 끼에 채 이 천 원이 안되고, 나는 아직도 이 싸구려 급식을 오백번은 더 먹어야 제대를 할 것이며, 제대를 하고 나서도 다시 얼마나 대단한 걸 배우겠다고 주방이 없는 방에 틀어박혀 궁상을 떨며 삼각김밥이나 샌드위치로 밥을 챙겨야 한다. 내 친구들의 밥상에 얽힌 역사와 현재도 나와 그리 다르지 않을 것이라 생각하자 조금 슬퍼진다. 나는 아주머니가 가져온 계란찜을 한 숟가락 떠 든다. 입 안에 넣고 호호 불어가며 식힌다. 친구들이여, 제대로 밥 챙겨먹지 못하는 세대여, 시대가 가난하든 가난하지 않든 젊은 날에 밥 못 챙겨먹는 일에는 변화가 없나보다. 십 만원의 월급으로 오천원짜리 계란찜을 시켜먹는 군생활의 사치도 이제 곧 있으면 끝이겠으나... 계란찜이 목울대를 울럭이며 넘어간다. 입 안에는 들기름과 파 향만이 남아 맴돈다. 맛있다. ---------------------------------------------------------------------------- 고등학교 때부터 밥 먹는 것에 대한 고민과 생각이 많았고, 지금도 이 젠장 맞을 급식을 먹으면서 아주 스트레스를 받고 있고..(아직 덜 굶어서...) 부대 근처에 청하식당이라는 곳에 가끔 드나들면서 이 곳의 음식과 분위기와 잘 차린 밥상이 주는 기쁨과 또 밥상을 둘러싼 내 다름대로의 고민 같은걸 정말 정성스럽게 준비한 음식처럼 공들여 쓰고 싶었는데, 소설이 안쓰여질 때 무어라도 써야겠다고 생각하고 휘갈긴 글이라 정작 청하식당에 관한 얘기는 하나도 없고, 마치 목구멍에 뭐가 걸린 것처럼 잘 쓰여지지 않았으나 엄마가 하도 글을 안올려서 올립니다. 엄마는 반성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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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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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집아씨님의 댓글

벌집아씨
작성일
아들아 엄마가 글을 안 올리는것이아니라 이틀 벌 집으로 철수하고 걸어다녀도 눈이감길정도로 힘든상황이지만 다 때가있는법이라 바로 그날부터 밤꽃로얄제리 이충하니 시간도 없고
정신도 없고 그렇다. 울아들 조미료들어간것 싫어하고 바로 바로해서주는 반찬 좋아하는데
엄마도 제일 가슴아푼것이그것이다.밥보다는 과일을 좋아하는아들인데 기숙사에들어가면서
과일은 구경도 못하고 그때부터 너의 키가 더이상 자라지 않음을보고 지금까지도 그것 생각하면 가슴이 찡하단다. 군에가면 모두 통통해서 오더만 오직 한사람 나의 아들은 삐적 말라서 오니 ~~~~~누구보다 제일힘든것은 아들인것을 알지만 보는 엄마 마음도 아프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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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민정님의 댓글

예민정
작성일
헉 안타가워라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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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영자님의 댓글

운영자
작성일
소젖을 먹고 자란 애들도 많은데 넌 엄마젖을 먹고 자랐으니 참 다행으로 알아야할거다.
젖을 뗄때가 생각나는구나
약 15개월을 먹인후 어느날 단칼에 끊어버렸으니.....저녁내내 보채는것을 네 엄마는 안타까움에 다시 주려하고 난 그러면 절대 못끊는다고 못주게하고....
그렇게 하루가 지나니 넌 포기하였고 다시 하루가 지난후 젖을 주는 시늉을 하니 넌 눈치를 보며 차마 물지를 못했지
아마 모든 부모들이 그렇겠지만 성인이 된 자식의 모습을 봐도 항상 아기때의 모습과 겹치는것은 언제까지가 될지 모르겠다

항상 찾아주시는 민정님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