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양반댁에서의 일이다. 늙은 대감이라는 게 주책도 없지, 종년을 시켜 이부자리를 펴러 들여보내면 매번 그냥 돌려보내지 않는 눈치다.
마나님이 그 거동을 알았으나 며느리·손주며느리까지 있는 점잖은 터수에 집안 시끄럽게 떠들 수도 없고, 그러고보니 대감은 날로 수척해 가는 것만 같고….
방 윗목에 놓은 물그릇이 쩡쩡 어는 어느 몹시 추운 겨울날 밤이다. 마나님이 가만히 보니 대감 사랑방에 살짝 들어간 종년이 나오지를 않는다. 마나님은 부엌으로 가 간단하게 약주상을 차리고 식혜와 홍시를 소반에 담아 때맞춰 일부러 잔기침에 신발을 끌며 대감방으로 향했다.
대감이 막 포동포동한 것을 애무하는데 안마당에서 발자국 소리가 점점 가까워진다. 옷을 입힐 겨를도 없이 다락을 열고 발가벗은 종년을 올려 보냈다. 옷가지는 펴놓은 이부자리로 덮어 가리고….
그러는데 마나님이 소반을 들고 들어선다.
“방이 춥지나 않으셔요?”
대감은 찜찜하니 부인이 따라주는 약주 한잔을 비웠다. 그런데 그만 좀 가주었으면 좋으련만, 자꾸만 얘기 실마리를 꺼낸다.
“셋째 혼기가 닥쳐오는데 어디 마땅한 데라도 있으세요? 손주며느리 친정아버지 회갑이 가까워 오는데 무얼 해보내야 하죠? 절에 공부하러 간 셋째 손주는 요새 잘 있는지 옷도 보낼 겸 누굴 좀 보내 보셔야죠?”
대감은 얘기가 통 귀로 들어가질 않는다. 그래 눈을 게슴츠레하게 뜨고 선하품을 자꾸 한다. 마나님은 속으로 웃었다(요만큼 지냈으면 약이 되었겠지…).
“고단하실 텐데 그만 쉬세요.”
마나님이 일어나 나간 뒤 대감은 벌떡 일어나 다락문을 열었다. 간신히 끌어내리고 보니 빳빳한 동태가 돼 쪼그리고 앉은 채 다리도 펴지 못한 종년이 무슨 말을 하려는 모양인데 얼마나 얼었던지 다닥다닥 아래 위 이만 부딪힌다.
문지르고 주무르고 얼마동안 수선을 떨어서 간신히 옷을 입혀 보냈다.
다음날 이른 아침부터 부엌에서는 콜록콜록 기침소리가 멈추질 않는다. 마나님이 빙긋이 입가에 미소를 띠며 부엌으로 들어갔다.
계속 기침을 해대는 종년의 등을 어루만지며 다정한 목소리로 말했다.
“고뿔이 단단히 들었구나, 네 방이 춥더냐? 아니면 찬물에 목욕이라도 했냐?”
종년은 고개를 푹 숙인 채 모기소리만 하게 말했다.
“아니에요.”
마나님은 능청스럽게 말했다.
“엊저녁 네가 대감 방에 이부자리 펴주러 갈 때만 해도 기침을 안 했는데….”
그날 밤, 종년이 그 전처럼 이불을 펴러 오자 대감이 또 손을 잡아당겼다.
“싫어요, 누구 얼어죽는 꼴 보고 싶으세요?”
멀리서 종년이 대감 방에서 금방 나오는 걸 보고 마나님은 빙긋이 웃었다.
|
|
댓글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