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담한 한 해
- 작성자
- 운영자
- 등록일
- 2018-05-25 06:50:56
- 조회수
- 1,178
한참 바빠야 할 유밀기에 한가한 벌쟁이들은 잘못된게 맞습니다.
그러나 꿀이 안들어오니 바쁠 이유가 없군요.
올해는 그야말로 사상최악...
정확히 말하면 제가 양봉업에 몸담은 34년이래 두번째의 벌꿀흉작입니다.
가장 큰 원인은 4~5월에 수차례 발생한 저온피해와 잦은 비입니다.
늦은 서리가 내려 땅두릅 새순이 피해를 봤다며 저의 2봉장이 있는 임실군에서 주변의 땅두릅 재배지 피해조사를 하러 다닐때만 해도 아카시아꽃과는 연관이 없을줄 알았습니다.
1차지역인 경상도에서 저온피해로 아카시아꽃이 안맺은 나무가 많다는 소식이 들릴때만 해도 정읍의 아카시아꽃은 이상이 없었습니다.
작년보다는 약간 못하지만 이상없이 피었고 꿀이 들어오기 시작하는 날이 다행히도 로얄제리를 쉬는 날이어서 수월하게 그동안 주었던 먹이와 산벚꿀등의 잡꿀을 모두 걷어내고 쏟아질 아카시아꿀을 받을 준비를 하였지요.
잡꿀을 걷어낸다는것은 거의 모든 양봉인들의 연례행사이고 얼마나 남김없이 깨끗이 제거하느냐에 따라서 새로 들어오는 아카시아꿀의 품질이 결정되기때문에 빠뜨릴수 없습니다.
아카시아나무는 꽃이 많이 피며 꿀까지 많이 나는 나무입니다.
예상대로 다음날부터 꿀이 들어오기 시작하였지요.
그러나 첫날인지 이틑날부터인지 비가 내리더니 꿀벌에게는 너무도 치명적인 피해...
저온까지 이어집니다.
날씨는 춥고 비가 내리지만 꿀이 많이나는 아카시아꽃은 피어서 꿀벌을 유혹합니다.
오로지 본능만 있는 미련한 꿀벌들
뒤를 생각지 못하고 그럼에도 꿀을 모으러 나가지요.
그리고 비에 젖고 꽃에 매달려 추위에 떨다가 돌아오지 못하는 대부분의 꿀벌들...
아카시아철의 저온과 비는 이렇게 치명적인데 이 현상은 거의 전국적으로 한번이 아닌 수회가 계속되었으니 어찌 적은 피해로 끝이 날수 있을까요?
우리는 특히 로얄제리를 채취하느라 벌통안의 상태를 너무 잘 알고 있기에 예민하고 빨리 알수 있습니다.
하루이틀내로 갑자기 확 줄어든 벌통안의 꿀벌들때문에 내부가 휑할정도입니다.
잘 길러놓은 일벌들이 귀소하지 못한탓에 다음날이면 아직 몸이 덜 여물은 여린벌들이 또 꿀을 가지러 나가지만 이어지는 저온현상에 어린벌은 더욱 치명적입니다.
이런 상황이니 어찌 로얄제리 생산을 계속할수 있을까요?
특히 아카시아전의 로얄제리 채취는 산모가 젖을 내듯이 일벌들의 체력을 고갈시켜 꿀생산에 타격이 많으므로 조심조심 하는중이었습니다.
타지역으로 이동한 일부 양봉가들은 꽃밭을 눈앞에 두고 굵어죽는 꿀벌들이 발생하는 사태가 벌어지기도 하였으니 우리는 더이상 로얄제리 생산을 멈출수밖에 없었습니다.
작년 10월경부터 품절된 로얄제리는 단골고객님들의 채촉을 받고 있었으므로 어쨌든 순서대로 문자와 통화를 한후 보내드렸는데 품절을 풀어놓으면 예약고객님 외의 다른분이 주문을 할수가 있으므로 미리 약속된 시간에 품절을 풀어놓고 주문을 하면 바로 품절시키기를 반복하는중에 날마다 홈피에 출근하며 감시를 하시던 나**님은 품절이 풀리자마자 재수좋게 먼저 주문하시는 행운을 두번이나 차지하신 적도 있다는 마눌의 말입니다~
어쨌든 정상적인 주문이니 주문서가 들어오면 보내드려야 할 책임이 있거든요...
올해의 아카시아꿀은 이처럼 대 흉작이며 정리채밀후 늦게까지 두었다가 꿀을 뜬 탓에 아카시아꿀은 물론 옻나무꿀까지 일부 섞여있어 아카시아꿀 고유의 맑은 색상이 제대로 나지않는 상태입니다.
저온에 비가 잦은 해에는 꿀도 묽으니 농축하는 과정은 필수이고 작년에는 그나마 비농축꿀도 가능했는데 올해는 어림도 없군요.
우리가 할수 있는 조치는 딱 하나...
자체적으로 진공농축기를 가지고 있으니 최대한 낮은 온도를 유지하며 농축시간을 길게 하는것이 그나마 손상을 적게 하는것입니다.
단 1회 농축하는데 아침에 시작한 농축기 가동이 농축을 끝내고 나니 밤 10시가 되었더군요.
올해는 어느곳을 막론하고 작년보다 우수한 꿀은 있을수 없으며 우리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저온일수록 수분함량이 많은 꿀을 가져오고 수분이 많은 꿀을 농축할수록 꿀의 품질이 저하되니까요.
현재는 옥정호 2봉장에서 때죽나무꿀을 받고 있습니다만 때죽 역시 저온으로 꽃송이가 적게 맺어 유밀이 시원찮습니다.
작년의 옻나무꿀과 밤꿀이 아직 조금 남아있으니 그것으로 위로가 될것같네요.
양봉자재를 사러와서 대화중에 울더라는 어느 벌쟁이 각시의 얘기를 들으니 저도 모르게 눈물이 나려하는군요.
그래도...
예전에 수년에 걸쳐 아카시아 나무가 노랗게 시들어가며 죽어가던 시절의 절망스럽던 시기보다는 훨씬 낫지요.
불과 1년후면 온산을 하얗게 덮고서 꿀을 쏟아부어줄 아카시아나무는 멀쩡하니까요.
올해 꿀을 못낸 아카시아 나무들이 내년에는 더 많은 꽃을 피워줄테니까요.
일찌감치 품절될 두승산밑 꿀벌집의 벌꿀상황에 너무 놀라지 마시기를...
택배를 보내는 마눌은 편해지겠군요...
주문이 밀린 로얄제리는 다음주부터 다시 시작할 예정입니다.
댓글목록
벌집아씨님의 댓글
꿀의 양이 다른해보다 적어서 일찍 품절될수 있으니 놀라지 말란 말씀입니다
문용희님의 댓글
몸이 뚱뚱해지도록 꿀을 먹고는 무거운 몸 이끌다 추위에 지처 죽는모습 가슴이 미어집니다
자연의 순리인데 어쩌겠습니까 내년에는 대풍작 되겠네요
힘 내십시요
운영자님의 댓글
꿀벌은 오로지 본능만 있으니 우리가 관리를 잘해야 하는데 기후만은 어찌할수 없는게 안타깝습니다.
내년엔....
내년엔~~
예민정님의 댓글
운영자님의 댓글
밤꽃은 아주 잘 맺었으니 기대해도 될것같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