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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 우리의 신혼집 > 자유게시판

[RE] 우리의 신혼집

작성자
운영자
등록일
2007-12-14 18:37:01
조회수
2,089

안녕하세요? 이윤범님~
오늘 세계일보에 좋은 소식이 있었군요
여름부터 문화재로 지정된다고 하여 그렇게 알고 있었는데
그새 확정 되었는가봅니다

지금은 아랫마을에 내려와 살지만 총각때 살았던 웃마을은 정말로 정겨운 돌담이
엄청 많아요
봄에 각시가 올린 사진 다시 복사해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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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의 신혼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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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7-05-11 13:1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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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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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벌집아씨

글제목 : 우리의 신혼집
글쓴이 벌집아씨
E-mail
등록일자 2007-04-10
조회수 66
파일 jpg.gif  DSC01632c.jpg (210.1 KB)
DSC01632c.jpg

오랫만에 우리가 처음 신혼살림을 차렸던 집을찾아 윗마을을 찾았다.
우리집에서 길 하나만 건너면 되는 윗동네지만 쉽게 찾아지지 않는다.
이 마을을 처음 들어서면 혹시 제주도를 찾아온것이 아닌지 의심이 갈정도로 모두 돌담으로
이루어진 마을이다.
모두가 떠나가고 얼마남지않은 노인층으로 이루어진 마을임을 조금씩 허물어져가는 돌담을 보고
알수있을것 같다.
10여분을 넘게 마을을 다녔지만, 60이 훨씬 넘은 아줌마 한분을 만날수 있었을뿐

DSC01635c.jpg

(옛날집과 현대집이 어우러져있지만 더 재미있는것은 담도 같이 어우러져있는것)
잠시 이야기를 나눈후 우리가 살던 집을 찾아갔다.
그곳을 찾아가며 울 신랑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처음 내가 살집을 보기위해 내려오니 얼마후면 시어머니가 되실분이 손에 흙을 묻이고
무엇인가 열심히 하고 계셨다.
그때까지만해도 며느리감이 이곳을 보고 실망해서 시집 안오겠다할까 잘보이려고 애쓰시던
어머님도 멀리떠나시고...

DSC01644c.jpg

(긴 돌담길을 걸어 옛집을 찾아가는 울 신랑)
집도 사람이 살아야 사람의 훈김으로 유지가 된다더니 그때까지만해도 멀쩡하던 집이
지금은 허물어져가기 직전 쓸쓸함이 감돈다.
이집은 최씨집안의 양반집이라 16년전이것만 안집 할머니의 몸종이 있었다.
귀도 안들리고 오로지 일만할줄아는 몸종 북제덕은 주인 할머니보다 더 나이가 많아보였고
그 북제댁은 새벽만 되면 나무로 된  큰 대문을 열고 해가지면 꼭 걸어잠궜다.
끼이익 소리를 내는 바로 그대문

그것이 당신이 해야할일처럼
할머니 말씀에 의하면 북제댁은 시집갔다 아이를 못나 바로 쫒겨왔다고 한다.
평생을 몸종으로 살아온 북제댁은 밥도 꼭 부엌에 웅그려 앉아서 드시곤했다.
할머니가 아무리 불러 같이먹자고해도 그분은 습관이 몸에 배어 그런지 언제나 부엌에서 드시곤했다.
처음 벌키울 터가 너무 좁다며 땅을 구입하자는 신랑말에 이집터가 무지 맘에들었지만
가진것도 없었고, 할머니두분이 살아계시고 또 팔 생각도 없었기에 마음에 미련이 많았었다.

DSC01647c.jpg

(신랑혼자 살던 사랑채, 밭으로 쓰고있는 저곳은 벌을 키우던곳)

안집 할머니도 복제댁도 그리워 대문을 들어서보지만 텅빈집에 흰 고무신만이 댓돌에 올려져있다.
아쉬움을 달래며 돌아서 길목을 나오는데  허리굽은 할머니 한분이 그 골목으로 들어서신다.
어디 사시냐고 물으니 우리가 살던 그집에 사신다고 하시기에 인사드리며
잠깐 이야기를 해보니 아들과 둘이 들어와서 사시는데 지난겨울 누가 대문을 떼어갔단다.
그넘의 골동품 장사들이 시골마다 설치고 다니더니 남의집 대문까지 떼어간모양이다.
신혼시절 추억이 담겨있기에 더 아쉬움이 남는다.
저곳에서 큰소리 땅땅치던 그분들은 다 어데로 가셨을꼬^^

DSC01650c.jpg

(대문 안으로 보이는 돌담이 정겹고, 대문옆에 나무단 하나 꼭 북제댁이 걸어나올것만 같다)
그때에 비하면 지금은 참으로 가진것이 많은것 같다.
우리를 아껴주시는 님들이 게시고,또한 우리 아이들에 든든한 신랑
작은 땅덩이라도 우리 앞으로 되어있으니
빚을 지며 땅을 구입하고나니 여러모로 힘에 벅차하는 나에게 울 신랑
"가볍게 생각하자구,그때 아무것도 없었을때도 살았는데"
맞다 아무것도 정말 아무것도 없었어도 살았었다.

저 집에 15000원의 월세로 들어있다는 소리듣고 너무놀라 기절 안하려고 배에 힘 꽉주고
내가 택한 사람이기에 친정 부모님한테는 아무소리도 못하고 결혼을 했었다.
엄마 아빠는 시골에 집한채는 가지고 있는줄 아셨었다.
내가 선택한 길이었기에 힘들어도 힘들다는 소리한번 못하고 젊음 하나믿고 견뎌왔었다.
그래 비록 세월은 흘렀지만, 지금까지 해온것처럼 성실하게 더 열심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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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불구불 정겨운 돌담길, 느릿느릿 걸으면 낭만길

세계일보|기사입력 2007-12-14 09:52 기사원문보기


가을걷이를 마친 전북 정읍시 덕천면 상학마을의 요즈음 화젯거리는 단연 동네 돌담의 문화재 등록이다. 문화재청은 이달 초 마을 내 돌담길 2400m를 제366호 근대문화재로 등록했다. 크고 작은 돌로만 겹겹이 쌓아 올린 ‘강담’이 수령 300∼500년의 느티나무·왕버들 3그루, 옛 가옥들과 어우러져 아름다운 전통 경관을 형성하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옛 담장으로는 16번째인데, 마을 주민들은 태어날 때부터 줄곧 봐온 담장이 문화재가 됐다는 사실이 여전히 믿기지 않는 눈치다. 그러면서도 “고부라진 골목길 운치가 제주도는 저리 가라여”라고 자랑이 여간 아니다.

상학마을 돌담은 이 마을 조상들이 수백년 전 호남평야에 홀로 우뚝 솟은 두승산(斗升山) 자락에 터전을 일구며 끝없이 나오는 돌로 담, 벽, 밭두렁을 쌓아 올리면서 만들어졌다.

돌 틈바구니에 뿌리내린 채 찬바람에 아랑곳 않는 돌이끼와 담쟁이는 1894년 황토현에서 관군을 물리친 동학농민군의 함성, 일제 때 노다지의 부푼 꿈을 안고 마을에 들어섰다가 빈손으로 떠난 뜨내기 일꾼의 한숨, 그리고 1970년대 ‘잘살아보자’며 지붕과 돌담을 헐어낸 자리에 시멘트를 채웠던 새마을운동의 광풍을 모두 다 기억하고 있는 듯하다.

하지만 무엇보다 이곳 돌담길 곳곳에는 도시 골목길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아늑함과 여유로움이 넘친다. 마을회관서 만난 오상환(73) 할아버지는 김장김치를 잘 받았다는 막내딸 전화를 받고 있었다. 그에게 돌담길은 어릴 때는 동무들과 해질녘까지 술래잡기, 자치기, 말뚝박기를 했던 공간이었고, 6남매 모두를 도시로 내보낸 지금은 적적한 겨울에 소일거리를 찾을 수 있는 장소다. 그는 “정 심심하면 동네 한 바퀴 돌다가 만나는 이웃이랑 이야기할 수 있는 곳이 고향밖에 더 있겄어?”라고 반문한다. 돌담장 너머 이웃집 처마에 매달린 곶감 몇 접을 매개로 과수 농부 30년의 애환을 풀어내고, 이웃으로부터 대처로 나간 아들딸 걱정을 전해 듣다 보면 오후 한나절이 훌쩍 지나가 버린다.

마을 돌담길 중 가장 아름답기로 정평이 난 헛간채 고샅길을 집 앞에 둔 창동댁 조귀례(79) 할머니는 돌담을 바람막이 삼아 철 따라 흐드러지게 꽃을 피우는 진달래, 분꽃, 코스모스, 국화를 보며 홀로 된 외로움을 달랬다고 한다. 조 할머니는 “영감이 15년 전쯤 먼저 저세상으로 간 뒤 아들이 계속 도시로 나오라고 하는디, 공기 맑고 경치 좋은 이곳을 내 뭐가 아쉽다고 떠나겄어”라며 “햇살 따뜻한 대청마루에 앉아 꽃구경, 바람구경 하면서 오가는 사람들과 얘기 나누는 맛이 솔찬허다”고 자랑이다.

약 1년 전쯤 지역 인터넷신문 ‘정읍통문’을 통해 상학마을 돌담길을 대외에 처음 알린 향토사학자 곽상주씨는 전통 골목길 보존과 복원이 점차 사라져가는 공동체 문화를 되살리는 지름길이라고 강조한다. 곽씨는 “돌담길 문화재 등록·관리가 시골 관광자원을 개발하자는 의미는 아닐 것”이라며 “적당한 높이로 미로처럼 얼크러진 전통 골목길을 보고 있노라면 담장을 통해 마을 소식을 주고받으며 공동체 문화를 다졌던 옛 사람들의 숨결이 그대로 묻어난다”고 말했다.

현재 전국 18곳의 담장·돌담길이 문화재로 지정됐다. 대도시 뒷골목도 새로운 문화공간, 관광자원으로 재평가되기 시작했다. 높다란 회색빛 시멘트 담장에 길들여진 젊은 세대에겐 이웃과 더불어 살았던 시대의 따뜻한 정서를 일깨워주고, 중장년층에게는 아련한 향수를 되살리며 공동체 복원의 꿈을 이어갈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게 바로 골목길이다.

정읍=글 송민섭, 사진 김창길 기자 stsong@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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