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생활
- 작성자
- 아들
- 등록일
- 2009-03-22 20:49:09
- 조회수
- 1,797
대학생활은 재미 있습니다.
듣고 싶은 수업도 골라서 듣고, 하고 싶은 공부를 하니까요.
수업 시간도 별로 안되요~ 하루에 두 시간 수업 듣는 날도 있고, 세 시간 듣는 날도 있고.
물론 공부의 깊이나 과제는 고등학교보다 힘이 들죠.
저는 민속문화학회에 들어가서 풍물놀이를 배우고 있습니다.
북치는거 힘들어요~
인문대 밴드 기타리스트이기도 하구요.
풍물 놀이도 배우고 기타도 배우려니 좀 힘들기는 해요.
그래도 재미있어요.
알바는 4월 중순부터 하려고 하는데 구하기가 쉽지 않네요.
이모한테서 전화가 왔는데 알바가 가능해도 4월 중순부터나 가능하다고 말씀드렸어요.
돈 벌기 가장 쉬운 방법은 과외를 구하는건데 선배들 말이 요즘은 경기가 안좋아서 과외 구하는 것도 쉽지가 않다네요.
전공수업으로 국어 연구의 기초, 문학이란 무엇인가, 전공 한문의 기초란 과목을 듣고
교양수업으로는 읽기와 쓰기, 현대시의 이해를 듣고 있어요.
채플이랑 대학진로와탐색이라는 것도 듣는데
채플은 학교가 기독교 학교라서 일주일에 한시간 듣고...
대학진로와탐색은 학점 채우기용 과목이에요.
문학이란 무엇인가 시간 과제로 독후감 쓴거 하나 올리고 갈게요.
권여선이라는 작가가 쓴 당신은 손에 잡힐 듯 이라는 단편 소설을 읽고 쓴거에요.
트라우마 속에 갇힌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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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005
국어국문학과
김정우
이 소설은 주인공 일상의 삶과 내면, 과거의 기억을 교차시킴으로써 이야기를 전개 해 나가고 있다. 주인공의 일상, 그 일상과 연결된 주인공의 생각·내면, 과거의 기억들. 이 세 가지가 서로 맞물리고 교차되는 과정 속에 이 소설이 가지는 무미건조하고 어두운 분위기가 형성된다.
주인공의 행동은 반복적이고 의미가 없다. 규칙적이라고도 표현 할 수 있다. 주인공의 이러한 속성은 담배를 하루에 딱 3 개피 만 피우고, 담배를 피우는 상황마저 정확하게 정해져있다는 사실에서 단적으로 드러난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그의 수필집에서 대학시절에 세상의 진실은 수량 · 수치 속에 들어 있는 것 아닐까 하고 생각해 자신의 걸음걸이, 오늘 사용한 단어의 개수 등을 매일 기록해 놨다고 쓴 적이 있다. 결국 이러한 행동을 통해 무라카미 하루키가 얻은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모든 것을 수량 · 수치화 하고 그 것을 기록하는 자신의 행동마저 무의미 하다는 것을 알았을 뿐이다. 삶이란 그것이 규칙적으로 돌아간다고 해서 그 규칙적인 것에 아무 의미가 없는 것은 아니다. 그 안에서 어떠한 의미를 찾을 수 있느냐, 어떠한 의미를 찾느냐 하는 것이 삶이다. 이 소설의 주인공은 자신의 삶에서 어떠한 의미도 찾지 못한 인물이다. 그는 매일 벌어지는 규칙적인 일 속에서 그 일들이 가지는 연관성조차도 찾지 못한다.
주인공이 떠올리는 과거의 기억은 주인공과 주인공의 어머니가 큰아버지에게 다녀오면서 겪은 일들이다. 버스 안에서의 할아버지와 그 할아버지의 이, 큰아버지와 큰아버지가 주는 약간의 돈, 양복점 거리에 그를 버리고 간 그의 어머니. 살펴봐야 할 것은 이러한 인물들이 점차 주인공과 별 관련이 없는 순에서 관련이 있는 순으로 서술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서술방식으로 인해 독자는 점차 중요한 이야기로 옮겨가고 있다는 기분과, 뒷부분에서 무엇인가 사건이 생기겠구나 하는 암시를 받을 수 있다.
이 소설에서 주인공의 무의미한 삶은 결국 그의 어머니로부터 비롯된 것이다. 어머니는 그를 버리려했고 주인공이 가진 이러한 트라우마는 결국 그의 삶을 무의미한 것으로 돌려놓았다. 주인공에게 지하철 남서쪽 종착역의 이미지가 달고 미적지근한 커피 맛인 것처럼 그에게 그의 어머니는 먹는 것을 거부하고 죽은, 사는 것도 먹는 것도 치욕이라고 생각하는 이미지로 기억되어있다. 그는 어떤 것에 대한 이미지가 얼마나 적고 사소한 것인 줄 알지만 결국 그는 어머니에 대한 이미지를 깨지 못하고 그 안에 삶을 가둬버린다.
소설 뒷부분에는 부부싸움과 부부싸움을 한 여자의 자살, 죽 집 주인을 죽이고 싶다는 욕망과 죽 집 부인이 주인공 어머니의 이미지로 교차되는 사건이 나온다. 부부싸움과 싸움을 한 여자의 자살은 그 방식과 그 사건을 의식하는 주인공의 생각의 방식이 독자들에게 기묘함을 불러일으키는 역할도 하지만 그와 그의 어머니가 큰아버지를 찾아가 돈을 타 낼 수밖에 없는 상황 역시 이와 비슷한 일 때문이 아닐까 하고 추측해 볼 수도 있다. 주인공의 아버지는 부부싸움, 혹은 그와 비슷한 일로 죽게 되고 그와 그의 어머니는 그 뒤 금전적인 문제로 인하여 주인공의 큰아버지를 찾아 갈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죽집 주인은 그에게 그의 어머니를 연상시키는 사람인데 그의 어머니는 먹을 것을 거부하다 죽음에 이르렀음에 반하여 죽집 주인은 먹을 것을 파는 사람이다. 주인공의 어머니는 지금 죽어있지만 죽집 주인은 살아있다. 이러한 묘한 대칭관계가 주인공의 트라우마를 자극시킨다.
이 소설의 마지막 부분은 결국 어머니에 대한 증오와 애정의 교차점을 보여준다. 또한 이 상황은 어머니와 관련된 트라우마에 갇힌 주인공의 삶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부분이기도하다. “어디…아프니…아가?” 하는 말은 주인공이 가진 삶의 아픔이 그 어머니에게서 나왔다는 점에서 굉장히 역설적이다. 이 소설의 제목 ‘당신은 손에 잡힐 듯’은 그의 어머니를 상징한다고 볼 수 있다.
댓글목록
운영자님의 댓글
아직까지는 네가 의지할수 있는 곳이 있기에 가질수 있는 여유라는 것을 잊지말고
모든것은 때가 있는 법이니 최선을 다하기 바란다
그 소설은 참 재미없구나~
정서룡님의 댓글
정서룡님의 댓글
운영자님의 댓글
신미령님의 댓글
운영자님의 댓글
정서룡님의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