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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가에서 닭키우기 > 자유게시판

농가에서 닭키우기

작성자
운영자
등록일
2009-05-03 05:43:41
조회수
3,816

꿩 대신 닭이라니? 임덕배
편집위원
pharmaj@chollian.net
- 농가에서 가축 키우기(1)
 

한 소년이 부엌문턱에 앉아 무엇인가를 초조하게 기다린다. 책보를 낀 옆구리에 잔뜩 힘이 들어가 있고, 이마에는 식은땀까지 비친다. 꾸-욱! 꾹꾹! 드디어 닭울음소리. 소년은 둥우리에서 방금 낳은 따뜻한 달걀을 꺼내들고는 고샅으로 달음박질친다. 사거리 구멍가게로 달려간 소년은 주인 노파에게 부끄러운 듯 쭈뼛쭈뼛 달걀을 내민다. 노파는 달걀을 받아 귀에 가까이 대고 흔들어 본 다음에야, 소년을 향해 턱짓으로 진열대 쪽을 가리킨다. 소년은 하얀 도화지 한 장(5원)과 ‘눈깔사탕’ 두 알(2원)을 집어들어 노파에게 확인시킨 다음, 다시 달음박질친다. 안개 깔린 등굣길 양옆으로 색색의 코스모스가 흔들려 가벼운 현기증을 일으킨다. 다행히 지각은 아니다. 그제서야 끈적끈적한 손바닥에서 사탕을 집어 입에 털어 넣는다.            

 

‘가을 사생대회’가 있던 삼십여 년 전 어느 날 아침, 필자의 기억을 더듬어보았다. 농촌 출신이라면 누구나 이와 비슷한 기억 한두 개쯤은 가지고 있을 것이다.

 

닭은 기르는 데 특별한 공을 들이지 않으면서도 사람에게 아주 요긴한 가축이다. 예로부터 달걀은 좋은 반찬거리였으며, 갑자기 들이닥친 귀한 손님의 접대에, 모내기나 벼베기, 피사리처럼 고된 노동을 한 다음 영양보충을 위해 닭고기는 훌륭한 음식이었다. 따라서 농가에서는 어느 집이나 서너 마리씩의 닭을 쳤다.

 

『삼국사기』나 『삼국유사』에 나오는 김알지 신화나 박혁거세의 신화를 보면 알 수 있듯이 닭은 어느 가축보다도 우리 민족과 깊은 관계를 맺어 왔다.

 

현대로 오면서 육류소비의 비중이 높아지면서 모든 가축들은 대규모로 사육되었고, 닭고기쯤은 아무 때나 손쉽게 구할 수 있는 음식이 되었다. 따라서 육종계(育種鷄)보다 사육기간이 긴 재래종의 닭을 기르는 농가가 사라지고 있으며, 특히 집에서 병아리를 까서 기르는 농가는 찾아보기 힘든 실정이다.

 

닭이 첫홰를 울 때 잠에서 깨어나 맞는 신성한 대지, 개나리 둘러친 마당에 봄볕은 가득한데 어미 닭을 따라 뽀르르 달려가는 병아리들의 광경……. 귀농을 꿈꾸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해봄직한 생각일 것이다. 그런 꿈을 간직한 사람이라면 병아리가 ‘물 한 모금 입에 물고, 하늘 한 번 쳐다보는’ 것을 두고, 모이 한 줌 물 한 모금에도 땅의 기운과 하늘의 기운이 잘 섞여야 건강한 생명을 이어나갈 수 있다는 데까지 상상력을 펼칠 수 있지 않을까.

 

사람은 닭에게 남은 음식과 허드레 곡식을 나눠주고, 닭은 달걀과 고기를 사람에게 베푸는 전통방식에 따른 닭 기르기에 대해 알아보고자 한다. 먼저, 『산림경제』에 나와 있는 재미있는 방법 하나를 소개한다.


“2월경에는 먼저 좌원(左園) 안의 땅을 잘 갈고 차조로 죽을 쑤어 뿌린 뒤 풀로 덮어두면 이틀 만에 구더기가 생긴다. 여기에 암탉 20마리와 수탉 5마리를 방목한다. 좌원의 것을 다 파먹고 나면 다시 우원(右園)으로 몰아넣는데 여기에도 차조로 죽을 끓여 위와 같이 한다면 닭이 저절로 살이 찐다.”

겨우내 부족한 단백질을 닭에게 보충해 주는 지혜로운 방법이다. 또, 닭장 주변에 수수를 심어 여름에는 그늘을 만들어주고, 가을에 거두어 먹이로 주면 닭이 잘 자란다는 것도 실려 있는데 농작물의 특성을 이용한 일석이조의 방법이 아닐 수 없다. 어쨌든 이런 조화로운 방식은 사육하는 닭의 수가 적어야만 가능한 것일 테고, 그래야 병치레 없이 닭을 칠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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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닭이 모이를 찾는 동안 주변을 경계하는 수닭

 

토종 암탉은 한 해 평균 170개 안팎의 알을 낳는데, 가족이 필요로 하는 달걀의 개수를 계산해 보면 적당한 마릿수가 나온다. 물론 병아리를 까려면 수탉이 필요하다. 수탉 한 마리가 15마리 내외의 암탉을 거느릴 수 있는데, 앞에서 본 바와 같이 수탉 한 마리당 암탉 4~5마리면 건강한 유정란을 얻을 수 있다. 물론 토종닭을 선택해 길러야 병아리를 깔 수 있는데, 토종닭이 취소성(就巢性 broodiness)이 강하기 때문이다. 취소성이란 암탉이 모성본능에 의해 알을 품으려는 행동을 말한다. 둥우리에 앉아서 깃털을 세우고 ‘꾹꾹’ 병아리를 부르는 소리를 내거나 공격적인 행동이 나타나면 알을 품으려 하는 것이다. 취소성은 유전형질의 하나인데 뇌하수체전엽에서 분비되는 프로락틴이 증가되면 나타난다고 한다. 말하자면 프로락틴을 주사하여 수탉도 알을 품도록 할 수 있다는 말인데, 반대로 안드로젠이나 에스트로젠 주사 한 방으로 취소성을 사라지게 하기도 한다. 닭은 알을 품고 병아리를 까서 키우는 동안에는 알을 낳지 않는다. 제때 알을 꺼내지 않아 알이 쌓이면 알을 품는 행동이 나타난다. 옛날에는 삼씨〔麻子〕를 먹여 알을 품지 않고 계속 알을 낳게 했다고 한다.

닭을 구입할 때는 세심한 주의를 기울여야 하는데, 토종닭만을 분양하는 전문농가를 통하는 방법이 확실하다. 레그혼종, 뉴햄프셔종, 안달루시안종 등은 취소성이 없는 대표적인 외래종이다. 토종닭은 개량종에 비해 부리가 긴 편이며 목털이나 꼬리깃에 윤기가 흐른다. 다리를 보면 쉽게 구별할 수 있는데, 토종닭은 다리에 진한 녹색이 비친다.

 

가끔 아이들로부터 닭은 왜 날지 못하느냐는 질문을 받게 되는데, 토종닭은 날개가 발달되어 있어 지붕 위까지는 충분히 날아오를 수 있다고 답해주면 된다.

 

“지가 알아서 파헤쳐 먹구 사는 걸 뭐. 알 낳기 시작하면 모이 한 줌씩 주면 되지. 가끔 깨구락지나 미꾸리 잡아다 주면 잘 먹어. 벌레구 뭐구 병아리가 먹기 좋게 부리루다 꾹꾹 눌러 멕이는 걸 보면 여간 신기하지 않어.”

“사람하구 같이 사는 건데 뭐이가 특별한 방법이 있어?”

 

인천광역시 강화군 양도면 도장리의 유총근(67), 한영규(70) 노인은 집에서 몇 마리씩 닭을 치는 데는 모이든 잔병이든 특별히 걱정할 것이 없다고 입을 모았다. 이 글은 필자가 도장리의 가을걷이를 거들면서 두 어른에게 틈틈이 전해들은 것을 바탕으로 한 것임을 밝혀둔다.

 

닭의 모이 가운데 곡류가 차지하는 비율은 70% 정도에 이르는데, 그밖에 송사리, 피라미, 생선 내장 등으로 동물성을 보충해 주고, 배춧잎을 썰어주거나 겨울에는 칡이나 아카시아의 잎을 말렸다가 빻아서 섞어주면 좋다. 밀기울이나 쌀겨, 깻묵 등의 부산물은 좋은 모이가 될 수 있다. 특히 깻묵에는 30∼40%의 단백질이 포함되어 있어 알을 낳는 닭에게 좋다. 요즘에는 가정용 정미기를 들여놓은 농가가 많아 쌀겨를 얻어다 먹이기가 쉽다. 다만 쌀겨에는 지방이 많이 포함되어 있어 습기가 높은 여름철에는 쉽게 변질되어 설사병을 일으킬 수 있으므로 주의해야 한다.

 

닭의 병에는 참기름이 만병통치라고 한다. 곡류 가운데 닭이 좋아하는 먹이로 옥수수가 있는데 크산토필과 카로틴이 있어 노른자를 튼튼하게 하며 빛깔을 곱게 만들어 준다. 한두 가지의 모이만 먹이면 영양의 균형이 이루어지지 않아 알을 잘 낳지 않는다. 그러나 무엇보다 좋은 방법은 사람이 먹고 남은 음식을 주며 집 주위에 방목하는 것이라 한다. 집주인의 건강이 균형 잡힌다면 닭의 건강도 보장될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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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화를 기다리는 둥우리의 달걀

 

닭장은 통풍이 잘 되는 동남향이면 좋다. 가두어만 기르더라도 되도록 시멘트 바닥은 피하는 것이 좋다. 닭은 적당한 모래를 먹어야 먹이가 잘 갈리고 소화흡수율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닭장 바닥에는 잘 썬 볏짚이나 톱밥, 마른 부엽토 등을 깔아주면 좋다. 또한 닭똥은 좋은 거름이 된다는 것은 아는 바와 같다. 닭장을 지을 때 족제비나 들고양이 등이 드나들 수 없도록 하는 것도 잊지 말아야 할 사항이다.

 

토종닭은 홰를 즐기므로 홰를 달아주어야 하고 알을 낳을 수 있는 둥우리도 필요하다. 둥우리는 짚으로 엮는데, 초가지붕의 용마름을 엮는 방법과 똑같이 적당한 길이로 엮어 뒤집어 다듬으면 된다. 어둡고 아늑한 구석에 북데기를 충분히 깔아놓으면 알아서 둥우리를 튼다. 닭은 땅을 파헤집으면서 먹이를 찾는 습성이 있으므로 모이통은 ‘브이’자로 홈이 파진 것이 좋고, 물을 담은 병을 그릇 위에 거꾸로 약간 비스듬히 매달아 수압의 원리를 이용하면 자동으로 공급되어 관리에 좋다.

 

종자(種子) 병아리는 첫서리가 내릴 무렵 깐 것이 건강하고 좋다고 하나, 일반적으로는 음력 3, 4월에 까면 잘 자란다. 대략 스물 다섯 개 정도의 달걀을 둥우리에 넣어주면 알을 품기 시작한다. 이때 둥우리는 어미 닭이 안정을 얻을 수 있도록 어둡고 한적한 곳에 두는 것이 좋다. 알을 품기 시작한 지 스무 하루가 되면 병아리가 나온다. 유정란의 건강상태에 따라서 다르겠지만 정상적인 상황에서는 약 스무 마리 가량의 병아리를 얻을 수 있다. 병아리의 첫모이는 마른 것을 줘야 한다. 옛날에는 알에서 깬 지 열흘 동안은 싸리나 대나무로 엮은 어리에 키웠는데, 올빼미나 솔개 등 맹금류의 표적이 되기 때문이었다. 어미 닭이 꾹! 꾹! 꾹! 병아리를 부르며 깃을 들어 병아리를 품는 모습을 할 때 하늘은 보면 영락없이 솔개가 높이 떠 있기 마련이다. ‘닭대가리’라는 말로 사람의 어리석음을 욕할 일이 아닐 듯싶다.

 

병아리를 깔 때 버드나무를 태우면 병아리는 죽고 어미는 눈이 먼다는 이야기가 있다. 조상들은 여러 가지 금기를 통해서 가축 하나에도 배려하는 마음을 잊지 않았다. 가령 닭날[酉日]에는 닭을 팔거나 잡지 않는다거나 하는 것도 그렇다.

 

병아리 가운데도 ‘왕따’ 당하는 놈이 있기 마련이다. 그런 병아리는 당분간 종이 상자에 넣어 따뜻한 방에 격리하여 키운다. 그렇지 않으면 모이에서 소외되고 이리저리 치어 죽는다. 달걀을 삶아 노른자를 으깨 먹이면 회복에 도움이 된다고 한다. 충분히 회복되어 활발해진 다음에 돌려보내야 잘 자랄 수 있다. 수평아리는 3~4개월이 되면 닭울음소리를 내기 시작하며 암평아리는 여섯 달쯤 키우면 알을 낳기 시작한다. 건강하게 자란 수탉은 약 2.5kg, 암탉은 2kg에 이른다.

 

닭의 가족을 보면 그 잘 짜여진 질서가 놀랍다. 인디언 전사처럼 카리스마가 강한 수탉은 항상 사방을 경계하며 무리를 이끌고 다니며, 위험한 상황에서 목숨을 걸고 무리를 지킨다. 수탉이 쪼며 덤벼들면 어른들도 쉽게 접근할 수 없을 정도이다. 여럿이 낳은 알이지만 가장 똑똑하고 모성애가 강한 암탉이 병아리를 까고 기른다.


갑작스런 상황이 발생해 미처 어미의 깃으로 대피하지 못한 병아리들은 풀숲으로 몸을 숨기 마련이다. 그때 살짝 다가가 풀숲을 들춰보면, 풀잎으로 위장한 조막만한 몸에서 할딱거리는 힘찬 생명의 호흡을 느낄 수 있다. 그리고 막 부풀어 터진 목화송이 같은 녀석들이 호르륵 일어나 어미에게 달려가는 장면을 보는 것은 행복한 일이 아닐 수 없을 것이다.

 

오늘날 아이들은 대부분 먹을거리의 생산과정에서 완전히 소외된 채 음식을 마주하게 됨으로써 그 소중함을 느낄 수 없다. 기꺼이 음식이 되어준 닭이나 돼지, 소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갖지 못함은 당연한 결과라 하겠다.

 

피그미족의 사냥 이야기를 하나 해야겠다. 피그미들은 기린을 잡아 놓고는 모든 부족이 둘러앉아 통곡을 하면서 운다. 그 울음에는 고기가 되어준 기린에 대한 감사와 생명을 빼앗은 것에 대한 미안함이 진심으로 담겨 있다고 한다. 고기를 공평하게 나누어 가진 그들은 먹을 것이 다 떨어질 때까지는 누구도 사냥을 하지 않는다고 한다. 그런 과정을 경험하며 자란 아이들은 늘 음식과 생명에 대해 감사하는 마음을 가질 수밖에 없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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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덕수님의 댓글

이덕수
작성일
우리도 닭을 키우며 병아리가 한창 나오고 있습니다.
수탉과 병아리를 거느린 암탉의 무리들을 바라보며 그들이 꾸려가는 집단의 질서와 가장으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해 나가는 수탉의 모습을 보면 배울점이 많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