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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도 혐오증 > 살며 생각하며

전라도 혐오증

작성자
운영자
등록일
2011-03-11 23:21:07
조회수
2,910

지역감정이란.....
저도 많이 겪어보았고 하고 싶은 말도 많았고....
이루아빠께서는  충청도가 고향이신듯하고 전라도에 처가가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더욱 넓고 폭넓은 시야와 사고를 가지신 분이시구요
그렇기에 우둔한 국민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겠다 싶어 올리신 글로 이해됩니다

전라도 혐오증이라고 표현하는데 저는 동의하지않고 경상도민의 전라도 혐오증이라고 생각되는군요
그러나 경상도민의 전라도혐오증이란 저의 표현도 사실은 정확하지 않습니다
전라도를 혐오하는 많은 경상도민이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경상도민도 많으니까요
경상도민의 전라도 혐오증은 왜 생겼을까?

신경정신과 의사인 김영우씨가 쓴책중에 "전생여행"이란 책이 잇습니다
그 책에 일본인들이 조선인을 핍박하고 미워하는 까닭이 언급돼 있는데....
물론 일반인들이 생각하기에 좀 이상한 형식을 빌렸긴 하지만~
그 이상한 형식은 조금만 시야를 넓혀보면 전혀 이상한 것도 아닙니다.
에드가 케이시의 "리딩"과 흡사한 경우가 한국에서 일어나지 말라는 법은 없으니까요

그들이 조선을 미워하고 싫어하는 것은 유전적인 문제라고 합니다
옛날, 백제의 유민들이 일본으로 망명하여....아시다시피 지도층이 되었지요
그들의 눈물과 한, 저주가 쌓이고 쌓여 일본인들의 유전자에는 조선을 향한 미움과  저주를 간직하고 있다는...저는 아직까지 일본인들의 한국인 혐오에 대해 이보다 더 공감이 가는 해석은 접해본적이 없습니다
제가 위의 예를 든 까닭은...

제가 총각때 살았고 결혼해서 각시랑 1년을 살았던 윗 돌담길 마을
나무대문을 도둑맞은 그집입니다
부자집이었는데 모두다 떠나고 안방마님이었던 할머니와 몸종이었다가 시집가서 쫓겨온 할머니..
그렇게 두분이서 여생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지금은 두분 모두 돌아가셨지만....

할머니의 말인즉슨 옛날에는 경상도가 훨씬 못살아서 전라도로 장사하러 온사람들이 많았답니다
당시의 전라도는 평야가 많아 비교적 넉넉할수 밖에 없었고 농지가 적은 경상도인들이 먹고살자니 당연히 그랬겠지요
제가 어릴때 우리집에서 하룻밤을 자고가던 행상아줌마들도 두어번 있었습니다
다른곳과는 달리 경상도와 전라도는 더욱 높은 산으로 가로막혀 있는데 
무주에서 거창이나 김천, 성주쪽으로 넘어가보면 이해가 쉽습니다
또 남쪽에는 지리산으로 막혀있지요
그 높은 산을 이런저런 물건들을 머리에 이고, 지고, 메고와서
쌀이나 잡곡들을 구해서 돌아갔을테고 그 과정에서 겪은 설움이야 이루말할수 없었을테고...

역시 윗마을 후배가 서울에서 직장생활을 하다가 경상도 아가씨를 만나 결혼하여 내려온 20여년 전
참 싹싹하고 상식적인 색시였습니다.
처음에는 단양이 고향이라고 하더니 나중에 봉화라고 합니다.
왜 그랬는지는 나중에 알수 있었습니다
어릴때부터 전라도가 나쁘다는 말을  무지많이 듣고 자랐다고 합니다.  전라도사람들도 경상도 사람 미워하고  싫어할거라는 선입감이 있었던것이지요
우리가 어릴때, 경상도라는 지역은 국민학교 사회책에서나 볼수 있었고 어떤지역이 나쁘다는 얘기는 상상도 할수 없었으니 그 색시의 얘기는 자연히 할머니의 얘기와 연결될 수 밖에 없었고 역시 경상도인들이 전라도인을 미워하는 까닭이 아닌가 생각되었습니다

같은 위도상에서도 꽃은 동쪽이 빨리핍니다
봄의 찬바람은 서쪽 바다에서 불어오고 동쪽으로 가면서 데워지므로 봄이 깊어질수록 내륙의 온도가 높아집니다
아카시아나무도 많고  거의 1주일이나 빨리피니 전라도의 양봉가는 물론 전국의 양봉가들이 경상도로 몰려가지요
어느 학교 운동장의 수도가에 말통으로 물을 받으러갔는데 전라북도 번호판인 제 트럭을 보고선 물을 떠가지말라던 교감선생님...
양봉인간의 하찮은 다툼인데도 경찰서로 넘기던 파출소장님...
한밤중 경찰서 당직이던 분이 기록을 훑어보고선 너무하다 싶었는지 누구라도 좋으니 보증을 세우고 나가라고 하더군요.
천막에서는 돐도 안지난 아기와 함께 밤새워 기다리는 색시가 있었고.....

그럼 제가 경상도인을 미워할까요?
피시통신시절부터  사귄 친구들이 있는 경상도입니다
그중에 한친구는 애가 없으니 울 막내 영섭이를 달라고 하고
그런데 차마 내새끼를 주지는 못하겠더군요~
막내놈 어렸을때 하도 말을 안들어서 경상도 친구에게 가라고 큰소리쳤더니 울면서 제방으로 가더니
주섬주섬 보따리를 쌉니다~
이런 황당한 녀석이 있나~ㅋㅋ

우리 고객님들중 상당수가 경상도인입니다
전라도 혐오증을 가졌다면 절대 있을수 없을테고 전라도 혐오증을 가지고 있었다 하더라도 내면에, 뇌리에 박혀있는 유전자의 부당한 명령을 극복하신 분들이라고 봅니다
지금도 적지않은 경상도인들이 전라도인을 미워하고 혐오스럽게 생각합니다
검색중에 경상도지역 어느 고등학교 동문 까페에보니 전라도를 비하하는 글을 스크랩해온것이 있더군요
그런 비상식적인 글을 돌려보는 사람들..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절대 그럴수는 없지요
그러나 정상적이지 않은 사람은 어디에도 있습니다
알고보면 불쌍한 사람들이지요
그들 또한 뿌린대로 거두게 될테니.....

저는 정상적이지 않은 사람들이 지지하는 정상적이지 않은 한나라당을 싫어합니다
그렇다고 민주당도 지지하지않습니다
김대중씨의 햇볕정책은 어느 누구보다 지지했지요
그것이 나라와 민족이 번영과 평화의 지름길임을 알고 있기에...
지난번 선거에서는 문국현씨를 찍었습니다

노무현씨는 대통령후보 경선때부터  지지했고 이때 노사모에도 가입했었습니다
민주당 후보라서 지지한게 아니고 개혁정책을 이어받을수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했기에...
그러나 대통령이 된 노무현씨는 대북특검 수용으로 첫단추를 잘못끼우는 실수를 하였고 정몽헌 회장의 자살...남북관계에 찬물을 끼얹어 시간낭비
그럼에도 그는 아무 사과도 없이 자신이 특검을 수용했던 햇볕정책을 따라하지요

그러나 이미 꼬일대로 꼬였고 개혁세력들은 노무현씨를 떠나버렸고, 결국  죽쒀서 개주고   자신도 이 정권의 조사를 받았고 말로는 자살..
인과는 눈이 없어 사람을 가리지않는답니다.
노무현씨가 대북특검을 수용하지 않고 햇볕정책을 속도전으로 추진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지금의 남북관계는 더욱 경색되고 전쟁위험은 높아가고....
모두가  첫단추를 잘못끼워 그 많은 개혁세력들의 지지를 잃은 까닭입니다

중국의 북한에 대한 도로건설...넘어가는 항구들
무진장 널려있는 희귀 지하자원들을  쓸어가고 있는 현실....
위와 같은 사실을 뻔히 알면서도 자기들의 뱃속을 채우려는 욕심으로 눈감아 버리고 오히려 지역감정을 조장하여 정권 연장을 꾀하는 한나라당 
같은 민족이 굶어죽어가는데도 남아돌아가는 쌀을 주지않는 정권...
그걸 옳다고 생각하는 어리석은 국민들
김정일 정권이 붕괴되면 북한이 고스란히 남한 차지가 될거라  믿는 사람들이 많으니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이 나라는 아직도 교훈이 부족한가봐요

이제 경상도는 그들이 전라도인 들에게 당하고 맺혔던 한을 충분히 풀었다는 것이 제 생각이고
더 이상의 미움은 지역이나 개인에 있어서 백해무익하다고 봅니다
제가 알고 겪어보았고 그래서 믿는 것은 뿌린대로 거두는 인과응보의 법칙이고  오늘 일어났던 일본의 대참사는 그들의 죄에 대한 하늘의 심판일수도 있고....
미움은 미움을 낳고 복수는 복수를 낳을테니 서로가 용서해야 할것입니다

요즘 저는  여기저기 다니면서 미친소리 좀 하지요~
"안철수를 대통령으로!"
부산출신이더군요. 지역을 떠나 참으로 능력있는 사람이고 충분히  이나라를 이끌어갈 만한 그릇이라고 생각하기에...

아래 무등산 타잔...박흥숙
옛날에 들었던 희안한 얘기였는데 덕분에 검색해보고 자세히 알았습니다
영화로도 만들어졌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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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 글은 경상도 경주/대구 출신의 지식소매상이 쓴 글입니다. 예전에 그에게 '전라도 혐오증'에 대해서 시간될 때 책 좀 써달라고 부탁한 적이 있는데, 그걸 봤는지 모르겠지만 1년전쯤에 아래의 짤막한 글을 올려주었습니다.   

이사람의 글에 대해서 저는 정말 공감합니다. 찬찬히 한번 읽어주세요. 선입견이 얼마나 무서운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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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감정은 사라지고 남은 것은 전라도 혐오증 뿐... 왜 전라도를 미워하나?

 

우리 나라에서 지금 문제가 되는 것은 일반적인 '지역감정'이 아니라 다른 지역 사람들이 모두 전라도 사람을 싫어한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이것은 단순한 '감정'의 수준을 넘어서 일종의 '편집증' 단계에 이른 '질병'이기도 하다. 그래서 나는 '지역 감정' 이라는 말 대신 '전라도 혐오증' 이라는 단어를 써야 제대로 이야기 할 수 있다고 본다. 

 

내가 겪은 대로 말하자면 경상도 사람들의 전라도 혐오감은 '전라도 사람을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어린 시절'에서부터 형성된다. 주로 서울에 살거나 살다온 가족과 친지들에게서 듣는 좋지 못한 이야기 때문이다. 예컨대 '아무개 집주인이 전세금을 띠묵었는데 전라도 사람이라 카더만' 이라든가, '아무개네 가게 경리직원이 돈을 빼돌리다가 들켰는데 전라도 어디 여자라 카더라' 는 식의 구체적인 '피해사례'가 화재로 오르면, 사실 여부나 그런 못된 짓을 한 '바로 그 사람'은 중요하지 않고 오직 '전라도 사람'이라는 것만 부각된다. 

 

그래도 무슨 구체적인 사건을 근거로 말하면 좀 나은 편이다. 너도나도 맞장구를 치다 보면 '전라도 사람은 배신을 잘하기 때문에 아무리 충성하는 것처럼 보여도 조심해야 한다' 거나 '군부대 철조망이 누구 때문에 생겼나' 하는 따위의 일반적이고 추상적인 주의 주장까지 거침없이 튀어나오기 때문이다. 

 

어릴 때부터 이런 이야기를 많이 듣고 자라기 때문에 경상도에는 아무리 입이 심심해도 '해태껌'은 사지 않는 아이들이 있다. 곧바로 출발하는 광주고속 버스에 빈자리가 있는데도 30분씩 기다렸다가 (광주고속이 정말 전라도 사람의 회사인지도 모르면서) 다른 회사 차를 타는 젊은이도 드물지 않다. 나는 대구에 사는 동안 이런 아이와 젊은이들을 많이 보았다. 나 역시도 예외가 아니어서 대학에 들어갈 때까지는 전라도 사람들이 '아무래도 좀 그럴 것' 이라는 선입견을 가지고 있었다. 

 

한 번도 전라도 사람을 만난 적이 없으면서 편견을 가지기로는 어른들도 마찬가지이다. 88고속도로가 뚫리기 전 대구와 광주는 서로 왕래가 드문 도시였다. 그래서 전라도 사람에 대한 대구 사람들의 '혐오증'은 거의 전적으로 서울 등 객지에 나갔다 온 사람들이 주는 정보 때문에 생긴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현상은 강원 충청, 경기도 등 다른 지역에서도 다르지 않다. 

 

어떤 사람들은 이것이 매우 '한국적인 특수문제'인 것처럼 이야기하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이것은 일정한 사회경제적 환경이 조성되면 어느 나라 어느 시대에나 생기는 현상이라는 말이다. 나는 대구를 떠난 이후에는 경상도 출신치고는 전라도 사람들을 많이 겪어본 편이다. 대학 기숙사 식당 주방 아주머니들에서 봉천동 고개 꼭대기 달동네 자취방 주인 아주머니, 단골로 다니던 봉천 중앙시장 순대집 아저씨가 그랬고, 신산스러웠던 80년대를 헤쳐 나갔던 동지들 중에도 유난히 그 동네 출신이 많았다. 당원들이 거의 백 퍼센트 전라도 출신이었던 평민당에 들어가 관악을 지구당(신림동) 교육부장으로 일한 기간에 사귄 사람들도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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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전라도 사람들을 좋아한다. 그들은, 내가 겪은 바로는, 다른 지방 사람들에 비해 싹싹하고 정이 많으며, 기회가 생기면 적극적으로 재미있게 잘 논다. 물론 어느 지방이나 그렇듯 개중에는 '욕심 많은 사람'과 '나쁜 사람'이 있고 '너그러운' 사람과 '좋은 사람'도 있다. 특별히 어느 한쪽이 많다는 느낌을 받은 적은 없다. 

 

그런데 문제는 어느 쪽에 속한 사람이건 하는 일이 대개 '험한 직업'이라는 사실이다. 예컨대 무슨 무슨 부장이나 대의원 등 직함을 가지고 있거나 지구당 사무실에 자주 나타나는 사람들을 보면 공사판 노가다, 포장마차 사장, 중국집 종업원, 복덕방 주인 등이 적지 않고 중고자동차 매매업을 하거나 이른바 '마치꼬바' 사장, 약사 또는 제법 번듯한 점포를 가진 상인쯤 되면 성공한 편에 속한다.

 

물론 가끔은 부동산을 좀 가졌거나 작은 기업체를 경영하는 사람도 없지는 않다. 대학을 나와서 사무직 근로자로 일하거나 의사 등 전문직업을 가진 사람들은 선거 철에 특별당비 모금 구좌로 후원금을 넣기는 하지만 '김대중 당'의 지구당 사무실에 나타나는 일이 거의 없다. 빈손을 쥐고 서울에 올라와 남들이 꺼려하는 험한 일을 해서 먹고살다 보니 특별히 머리가 좋은 경우를 제외하고는 공부를 제대로 시키지 못해 자녀들 역시 생산직이나 하급 사무직 근로자, 음식점 등 서비스업체 종업원으로 일하는 경우가 많다. 

 

 

87년 대선 당시 김대중과 김영삼의 선거유세를 다 가 본 사람은 누구나 느꼈겠지만 '양김'의 지지자들은 행색이 판이하게 다르다. 김대중 유세에 나오는 사람들은 잠바를 걸친 사람들이 대부분이고, 옷차림뿐만 아니라 얼굴이나 손을 보아도 고생하며 사는 흔적이 역력하다. 반면 김영삼 유세장에는, 그가 이직 야당 후보였던 시절에도 말끔하게 넥타이를 매고 바바리를 입은 신사들을 흔히 볼 수 있었다. 

 

전라도 사람들이 업신여김을 받는 이유를 찾으려고 '차령 이남은 지세가 배역의 기운이 있으니 그 곳 사람은 중용하지 말라' 고 한 고려 태조 왕건의 훈요십조까지 거슬러 올라갈 필요는 전혀 없다. 

 

'전라도 혐오증' 의 원인은 딱 하나, 전라도 사람들이 가난하다는 것이다. 돈 없고 '빽' 없고 배운 것 없이 객지에 가서 그 사회의 맨 밑바닥 일을 하는 사람들은, 그들이 특정 지역 출신이든 특정한 인종 집단이든 멸시를 받게 되어 있다. 

 

지금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70년대와 80년대의 우리 나라 텔레비전 연속극에서는 목욕탕 때밀이,작부,깡패,도둑놈,식모,사기꾼,노가다,노점상 등은 거의 예외 없이 전라도 사투리를 했다. 시나리오 작가와 프로듀서가 전라도 사람을 미워해서가 아니라 실제 사회가 그랬기 때문이다. 만약 이런 직업을 가진 등장인물들이 주로 투박한 경상도 사투리를 했다면 그 드라마는 '리얼리티가 없다'는 핀잔을 들을 수밖에 없을 것이며, '높으신 분들'께서 호통을 쳐서 당장 '바로' 잡았을 것이다. 

 

대한민국 사람 셋 가운데 하나가 사는 수도권에서 이런 밑바닥 직업을 거의 다 전라도 사람들이 하는데, 그들이 멸시받지 않는다면 오히려 이상한 일이라 해야 할 것이다. 

 

서울에 사는 경상도 사람들이 (다른 지역 출신도 마찬가지이지만) 보는 전라도 사람들은 가난하고, 제대로 배우지 못했고, 행색이 초라하고, 몇 푼 되지도 않는 돈 가지고 악착같이 다투고, 대낮에도 술먹고 다니고..., 한마디로 말해서 함께 어울리고 싶지 않은 사람들이다. 그래서 고향에 가서 '그런 전라도 사람' 들에 대한 험담을 주저 없이 한다. 그러나 그들은 고향에 뿌리박고 사는 전라도 사람들이 어떤지는 전혀 모른다. 뿐만 아니라 서울에서 자기네가 본 전라도 사람들이 왜 그렇게 가난한지를 따져보지도 않는다. 

 

나는 전라도 사람들의 '상대적 빈곤'이 박정희 시대에 진행된 지역적 불균등 발전의 결과라고 본다. 아다시피 80년대까지 대한민국의 공장이라는 공장은 거의 모두 수도권과 경남북에 몰려 있었다. (경남북이 전남북보다 산업 입지가 좋았기 때문이 라는 주장은 타당성이 없다고 보지만 여기서 따지지는 않겠다.) 따라서 경기도와 경남북의 시골 사람들은 농사만 지어서는 먹고살 수가 없는 경우에도 그렇게 멀리 까지 갈 필요가 없었다. 가까운 지역 공장에서 일하다가 유사시에는 언제든 고향집 에 갈 수 있었고, 서울까지 가는 것은 확실한 일자리가 있는 경우뿐이었다. 

 

다시 내 경험을 가지고 이야기 해 보자. 우리 친척들은 친가와 외가를 막론하고 대부분 대구와 영천, 경주 일대에서 살았는데, 내가 중학교에 다니던 70년대 초반에 나보다 나이가 서너 살 많은 친척형과 누나들은 학교를 다니지 않으면 모두들 대구에서 공장을 다녔다. 누나들은 모두 시집을 가서 지금은 살림만 하지만 형들은 기술 을 배워서 조그만 공장을 차리기도 했고, 그런 누나와 형들의 도움으로 공업 고등 학교나 대학 공부를 한 내 또래 사촌들은 서울이나 수원 등지의 대기업에서 일하고 있다. 

 

반면 한반도의 곡창 전라도 사람들은 60년대 후반 이후에 진행된 농업의 해체로 인해 가장 큰 타격을 받았고 그 지역에 산업시설이 없었기 때문에 무작정 서울로 갈 수밖에 없었다. 나이 들어 간 사람들은 몸으로 때우는 궂은 일밖에 할 수가 없었고 기초교육이라도 받은 젊은이들은 공장으로 갔다. 내가 개인적으로 충격 받은 것은 특히 젊은 여성들의 경우였다. 

 

대학 신입생이던 78년 여름부터 나는 구로공단 노동 야학에서 선생노릇을 했는데, '호남선 완행열차를 용산역에서 내려서, 길을 건너지 않고 버스를 타면 구로공단 행이요, 길을 건너서 타면 청량리 588' 이라는 말을 들은 것이 그맘때였다. 야학 학생이 약 40명쯤 되었는데 거의 다 섬유, 봉제, 전자 공장에 다니는 열 일곱에서 스물 사이의 내 또래 전라도 처녀들이었다. 학생들의 신상자료에는 월 평균 급여액 이 나와 있었는데 매주 60시간 정도 일한 대가가 2만 5천원 정도였다. 당시 학교 기숙사에 식비로 내는 돈이 월 2만 1천원, 신림 9동 골목의 2인 1실 하숙비가 월 3만 5천원 이었고, 나는 고2짜리 남자아이에게 매주 여섯 시간 영어와 수학을 가르치는 일로 월 6만원을 버는 참이었다. 

 

야학 학생들의 근로시간과 월급 액수는 나에게 적지 않은 정신적 충격을 안겨 주었다. 당신 많은 젊은이들이 그랬던 것처럼 나도 노동자들과 어울리면서 비로소, 이른바 명문대학을 졸업한 사람들이 누리는 안정된 생활과 높은 지위가 불평등이 라는 사회악에 '오염된 열매' 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별 힘은 없지만 박정희 정권의 유신독재를 끝장내기 위한 싸움에 참여해야 하겠다고 마음먹은 것도 이때였다. 이야기가 조금 엇길로 나갔지만 내가 말하려고 하는 것은 분명하다. '서울의 전라도 사람들'을 그렇게 만든 것은 '전라도의 지세' 도 아니고 '전라도 사람의 타고난 근성'도 아닌 박정희 정권의 과격한 농촌 해체 정책과 경상도 위주의 불균등한 산업유치 정책이었다는 것이다. 

 

이렇게 보면 '전라도 혐오증'은 단순한 '감정'이 아니라, 특히 경상도 사람에게는 치료하기가 매우 어려운 정신적인 '질병'이다. 경상도 사람들은 (물론 다 그런 것은 절대로 아니다) 자기네가 30년 동안 대통령을 배출했다고 자랑하면서도, 그 대통령들의 잘못된 정책 때문에 피해를 본 전라도 사람들에 대해서 미안해 하기는 커녕 그들을 싫어하고 업신여긴다. 

 

장기간에 걸쳐 반복해서, 주위의 충고와 권유를 무시하면서, 이치에 맞지 않는 주장이나 행동을 하는 사람을 보면 보통 '저 사람 제정신이 아니다' 라고 말한다. 이런 의미에서 다른 지역사람이라면 모를까, 경상도 사람이 스스로 '전라도 혐오증' 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의식하고 있으면서, 또 그것을 노골적으로 내보이기까지 한다면, 이것을 '정신병' 말고 다른 어떤 말로 표현할 수 있을까? 

 

이 표현이 옳지 않거나 지나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니까 구체적인 예를 몇 가지만 들어보자. 청와대를 포함해서 우리 나라 정계, 군부, 관계, 학계, 재계의 의사결정 구조 꼭대기에는 '부산 복국집'에서 '지역감정이 확 일어나야 한다' 고 말한 전직 법무장관과 내무관료들 같은 경상도 출신 '나으리' 들이 앉아 있다. 이 사람들은 평소에 인사권을 행사할 때 경상도 출신을 우대해 중요한 자리에 기용하면 서도 전라도 사람들은 '출세길' 을 막아 버린다. 

 

그러고는 아주 중요한 직책에 사람을 쓸 때는 '능력에 따른 인사를 하다 보니 경상도 사람이 좀 많게 되었다' 고 주장한다. 김영삼 대통령도 집권 중반기 내각에 전라도 출신이 거의 없는 것을 기자들이 지적하자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옳은 말이다! '노른자위 보직을 여럿 거친 사람일수록 업무능력이 뛰어나다' 는 기준을 가지고 사람을 찾으면 전라도 사람이 보일 리가 없다. 원래부터 노른자위 보직은 그 사람들에게 주지를 않았기 때문이다. 

 

만약 어떤 대학교에서 재단 이사장과 총장이, 아무리 능력이 있는 사람이라도 전라도 출신은 교수로 뽑지 않는다는 것을 교수 인사의 원칙으로 삼고 있다면 (지금은 달라 졌기를 바라지만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그런 대학이 정말 있었다), 그런 사람들이 정신병 환자가 아니라고 할 수 있을까? 육군사관학교에 입학할 때는 전라도 청년이 경상도 청년만큼 수가 많은데, 별을 단 사람을 보면 전라도 사람이 거의 없는 이유 가 '경상도 사람이 유전적인지 어떤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지휘업무를 더 잘하기 때문에 별을 많이 달았다'고 누가 말한다면, 이 사람을 제정신이라고 할 수 있을까? 

 

우리 언론과 국민들은, 경상도 사람이건 전라도 사람이건, 일본에 사는 우리 동포들이 일본 사람에게서 차별을 당하며 사는 것을 보고 매우 분개한다. 이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그렇게 분개하는 사람들이 자기가 사는 대한민국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지역 차별에 대해서는 별로 분개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민족차별 이나 인종 차별은 나쁘지만 같은 민족 안에서 지역 차별을 하는 것은 괜찮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일본사람들은 (다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예나 지금이나 '조센징은 더럽다'고 한다. 그런데 식민지 주민 '조센징'이 일본 사람들이 '더럽게' 여기는 일을 하면서 '더럽게' 산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었다. 그런 일에 부려먹을 생각이 없었다면 그네들이 조선을 집어삼킬 이유가 없었을 것이니까. 그들은 또 국적을 포기하지 않는 조선인 또는 한국인이 일본 사회에서 정상적으로 살아갈 수 있는 길을 자기네 손으로 오늘날까지 여전히 막아 놓고 있다. 

 

'조센징'이 자기네가 '더럽다'고 여기지 않는 일은 할 수 없도록 해 놓고는 그 입으로 '조센징은 더럽다' 고 하는 것이다. 이런 짓을 하는 일본 사람을 제정신이 아니 라고 생각하는 점에서는 경상도와 전라도 사이에 아무런 차이가 없다. 그런데 경상도 출신의 '나으리'들은 자기네도 똑같은 짓을 하면서 자기가 정신 나간 사람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으며, 다른 지역 사람들 역시 정신 나간 짓 그만두라고 충고하는 법이 별로 없다. 모두가 정신이 나간 것일까? 

 

전라도에도 요즘에는 공단이 생기고 있다. 중국경제가 번창하고 서해안 고속도로가 다 뚤리면 더 좋아질 것이라고 하지만 그 정도로는 '전라도 혐오증'이 치유될 수 없다. 달동네에 몰려 사는 '서울 전라도 사람들'이 호화 빌라와 고급 아파트에 사는 '서울 경상도 사람들' 만큼 잘 살게 되어야 비로소 이 질병의 '발병 원인'이 사라질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문제의 본질을 덮어둔 채 막연히 '우리 모두 지역감정을 청산합시다!' 하고 외치는 분들께 제발 좀 가만히 있어 주시라고 부탁하고 싶다. 그런 개탄보다는 속마음을 열고 소곤소곤 조용하고 끈기 있게 토론하고, 팔도의 시민들이 저마다 다른 지역을 오가면서 그 곳의 실정과 거기 사는 사람들의 심정을 (특히 전라도 사람들의 심정을) 이해할 수 있도록 상호교류를 지원하는 것이 당장 효과가 눈에 보이지는 않겠지만 문제 해결에 차근차근 다가서는 바른 길이기 때문이다. 

나는 '전라도 혐오증' 이라는 이 '집단적 정신병' 을 그 자체로서는 별로 해롭지 않은 '지역 감정' 수준으로 완화하는 데만도 몇십 년이 걸릴지 모른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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