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안의 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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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운영자
- 등록일
- 2007-09-15 06:34:05
- 조회수
- 3,494
전주시내를 지나 외곽에서 4차선도로로 시작하는 진안 가는 길은 너무 한가하여
좋았고 오르고 또 오르는 소태정 고개는 경사가 심한길이 구불구불 높기도 하고
까마득한 아래로 내려다보이는 산허리의 층층나무 군락들은 가평에서 화악산으로
넘어가는 층층나무 못지않았다
왜 완주군은 이렇게 좋은 곳을 그냥 방치할까?
강원도의 어느 고개는 10미터마다 높아지는 해발을 표시하니 참 좋았는데....
높은 고갯길을 자동차로 넘다보면 재미있는 것이 많다.
올라갈수록 차안에 표시되는 온도계 숫자가 내려가는 것도 재미있고
그만큼 시원해지니 정상에 오면 아쉬움이 느껴진다.
영락없는 말귀 형상의 돌산이 우뚝솟아 있는 진안은 신비로운 고을이었지만
골짜기 초입으로 가는 길엔 대부분의 사람들은 떠나고 남은 것은 허물어진 토담집들....
용담댐 반대를 휘갈겨쓴 빨간색의 구호가 여기저기 현란한 사이로 아직 떠나지못한
사람들이 불안하게 살아가고 있었다.
도로엔 물이 차는 높이인 264미터가 여기저기 표시되어 있어 이 도로도 마을도
저들의 추억도 모조리 물에 잠길거라는 것을 알수 있었다.
기존의 재래종 꿀벌을 키우는 농가들이 모두 보상을 받고 나갔으니 전혀 문제될것이
없고 아직 물이 차려면 2년은 더 기다려야 하니 그때까지는 끄떡없이 꿀을 뜰수 있다며
자리를 소개한 봉우님.....
아! 이렇게 좋은 곳을 두고 왜 강원도만 쫓아다녔을까?
골짜기에 흐르는 물은 아무리 심한 가뭄이 들어도 마르지않을 거라는 것을 알수
있었고 곳곳에 널린 다래덩굴과 물가에 줄줄이 늘어서있는 때죽나무는 너무 황홀하여
과연 내가 이곳에 올수 있을지 믿어지지 않았다.
아카시아가 채 끝나기도 전에 들어온 그 산
한밤중에 벌을 싣고 도착하여 새벽에 짐을 푸는 날
골짜기를 울리는 커다란 소리는 처음 들었는데도 tv의 만화영화에서 보았던 바로 그 소리....
딱따구리의 나무찍는 소리라는 것을 알수 있었다.
얼마나 세게 나무를 쪼기에 저렇게 크고 맑은 소리가 날까
그러나 아쉽게도 딱따구리의 나무찍는 소리는 그날이후 두번다시 들을수 없었으니
그의 공간에 침입자가 된 내가 미안해졌다
용운이도 가고 이제 혼자남은 산중생활
가까운 마을은 2키로는 내려가야 하였으나 그래도 이때는 꿀을 뜰수있었으니 견딜만 하였다.
꿀을 뜨는 날은 각시도 데려오고 소를 키우는 송이아빠도 정읍에서
오고. 그래도 사람이 부족할땐 후배인 광수를 데려왔다
그리고 더 이상 벌집안의 꿀이 늘지않아 꿀을 뜨는 것은 포기하였지만
먹이를 주지않을 정도는 당분간 계속되었다.
뜰수는 없어도 먹이만 안주어도 절약되는 돈이 어디냐?
트럭뒤에 포인터 덜렁이를 싣고 진안으로 가는 밤 전주시내를 지나는데 옆에서 달리는
차를 보고 그 큰덩치로 짖어대니 차안의 사람들은 어이없어 웃고 나는 겸연쩍어 웃었다.
덜렁이와 지내는 진안생활이 길고 지루하게 이어졌다.
밤하늘엔 수천 수만개의 별들이 금방 쏟아질 것같아 어지러웠지만
하늘에 매달아놓은 모빌같은 입체감이 좋아서 하늘이 까말수록 잘보이는 신기한 별
을 보러 밤마다 하늘을 보았다.
어릴적 고향에서 보았던 별들은 모두 그곳에 있었다.
나 언젠가 저 별들에 가보리라....
영혼이 자유로워지는 그날 맨처음 가보리라.....
밤마다 현란한 반딧불은 사람인 나도 혼을 빼앗길 지경으로 많았으니
덜렁이는 오죽할까. 이리저리 쫓아다니면서 짖어댄다.
이녀석아 시끄럽다. 그만좀 자자~
주인이 자는 천막앞에서 지켜주면 좋을텐데
이녀석은 밤새도록 산을 쏘다니는지 여러번을 불러야 뛰어들어와 헐떡거리며 꼬리를 흔들었다.
어느날 밤에는 요란하게 짖어대기에 나가보니 무엇인가를 앞에두고 난리가 났다
후레쉬를 비춰보니 동그랗게 오그린 고슴도치였다.
작고 까만 눈이 있는 온통 날카로운 가시를 가진 야생의 고슴도치를 그때 처음 보았다.
가끔 집에 다녀오는 날은 모험이었다.
하루만에 돌아온 골짜기는 입구에 들어서면 더욱 불안해진다.
과연 모든것들이 제자리에 어제처럼 있을까.....
바로 코앞까지 가야 보이는 벌통과 달리 덜렁이는 항상 조금 앞에나와 있는것을 보고
그리고 꼬리를 흔드는 것을 보고서야 안심이 되었다.
아마 꼬리를 흔드는것은 아무일 없으니 어서오라는 덜렁이의 마음이라고 무의식적으로 생각한것같다
덜렁이가 천막을 지키는데 얼마나 충실한지 여름에 휴가를 받아 서울에서 내려온
동생의 전화를 받고서야 알게되었다
"형. 여기 벌천막에 도착했는데 커다란 개가 얼마나 짖어대며 달려드는지 내릴수가
없어. 개이름을 부르면 나을것 같은데 이름이 뭐야?"
덜렁아 덜렁아 이름을 부르며 겨우 내릴수 있었다는 연락을 다시 받을수 있었다
물가에도 산에도 커다란 오디가 주렁주렁 열린 뽕나무가 많았다.
누구하나 따먹는 사람이 없어도 오디는 해마다 열려서 주변의 물과 흙을 까맣게
물들였고 내 손도 까맣게 물들었다.
입도 까맣게 되었을 터였지만 볼 사람이 없으니 상관없기는 하였다.
오디철이 지나고 나니 사람들이 슬슬 바구니며 그릇을 들고 올라오기 시작했다.
까만색 산딸기를 따가기에 그거 뭐할거냐고 물었더니 복분자라고 하는데 술을 담으면 좋다고 한다.
까맣게 익는 산딸기가 신기하기는 하였지만 오디처럼 맛있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냥 떨어지는 복분자가 아깝기도 하고 좋은 거라니까 그것을 따먹으며 시간을 보냈다.
방학을 하여 온식구가 천막으로 이사를 했다.
집에 남아있는 발발이 개 한마리는 물론 대여섯 마리되는 닭까지 데려와 천막 주변에 풀어놓았는데 한마리도 산짐승에게 잃지 않은것은 아마 덜렁이 덕분이었을것이다
아이들은 하루종일 물놀이에 여념이 없고
밤이면 골짜기 돌틈에 있는 메기를 잡기 위해 낚싯대를 드리웠다.
초등학교 2~3학년에 다니던 막내도 금새 몇마리를 잡을수 있는 돌메기 낚시...
작은 막대기를 잘라 낚시를 달고 지렁이를 끼워 조금 깊은 물에 드리우면 메기란놈이
금새 달려든다. 지렁이만 떼어먹히는 경우도 많아서 아이들거랑 각시 낚싯대에 지렁이
끼워주는 일이 귀찮기도 하지만 이보다 더 재미있는 놀이는 없었다.
물소리만 아니면......
위에 남아있는 천막과 벌들이 불안하여 내내 불안한것이다.
온갖 천가지 만가지 소리가 나는 물소리는 강원도 횡성에서 같이간 일행이 만났던
떼강도들의 외침이 되고 벌통을 싣는 소리와 자동차 소리가된다.
칠흑같은 밤에 들리는 물소리는 온갖 마귀들의 악다구니가 되니
화악산 골짜기에 있을때 휴가를 온 형님부부...
물가에 텐트를 치고 자다가 무서워서 우리 천막으로 피신온것이 이상한 게 아니었다
생선을 담은 비닐봉투를 시원한 물속에 넣어놓았다가 꺼내려니 커다란 메기란 녀석이 파다닥거리며 달아나는 것을 보고 어항에 생선내장과 오징어 다리를 이용하여 메기탕은 실컷 먹을수 있었다.
방학이 끝나니 또 혼자가 되었고
점점 온도가 내려가는 골짜기는 이제 더이상 찾는 사람이 없는 황량한 골짜기가 되었다
1년은 때죽나무꽃이 시원찮아 바로 철수했고
꼬박 2년여름을 지낸 진안의 골짜기가 이 새벽에 왜 갑자기 그리워질까
개 값이 비싸던 어느 해
거금 18만원을 받고 덜렁이를 팔아버렸다.
철창에 갇혀서도 무슨일이 있어도 주인을 믿는 다는듯이 나만 바라보던 그 눈빛이
왜 갑자기 생각이 날까...
덜렁아 미안하다.
그러니까 사람은 물면 안되는거야......
댓글목록
운영자님의 댓글
아래는 물이 차올라서 갈수없게된 골짜기 입구사진입니다
이덕수님의 댓글
운영자님의 댓글
한때 젊은날의 추억이 되었을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