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광덕봤습니다
- 작성자
- 운영자
- 등록일
- 2008-10-31 23:57:28
- 조회수
- 3,690
가을은 깊어가고 저는 요즘에야 조금 시원해짐을 느끼며 마음껏 상쾌함을 만끽하고 있습니다
올해는 왠일일까요?
다른사람들과 너무 차이가 많이 나는 것입니다
가끔 그런사람들 있지요~
다들 춥다고 난리인데도 혼자만 반팔입고 끄떡없는 사람
제가 그런사람이 되어가는가봅니다~
모르게 살짝 열어놓은 창에서 쏟아져들어오는 상쾌함도 잠시
어느새 알았는지 마눌이 눈을 부라리며 창문을 닫으라고 성화입니다
이 나이에 마눌이기는 사람있을까요...^^
닫는척하고 잠시후 살살 열어야지
거실에서 담요도 깔지않고 시원한 바닥에서 잠을 자다보면
새벽이면 처음에 차가웠던 바닥이 체온으로 덥혀집니다
혼자자면 무서울것같은데 이것도 습관되니 좋군요~
"당신은 내가 사람만들어놨어!"
결혼전에는 더운밥을 먹을줄 몰랐대나 뭐래나
혼자 벌키우면 시간이 없어 아침에 밥해놓고 저녁까지 먹었지요
그렇게 찬밥 먹다가 색시가 맨날 뜨거운밥 해주니 밥을 먹기가 고역입니다
"너 혼자 다먹어라!"
그리 짜증낸 일도 있기는 하였지요
그래도 오늘은 메리야스에 남방하나 걸치고 내장산밑 행사장에 갔더니 조금 쌀쌀함을 느낍니다
더운것보다 훨씬 좋은 쌀쌀함
정말 4계절이 없는 나라는 무슨 재미로 살까..
24일 고등법원의 골프장 판결이 있었습니다
우리가 또 이겼군요
겉보기에 1등공신은 누가 뭐래도 저와 후배 용운이지만 사실은 두승산의 금광이 아니었으면 어려웠을것입니다
두승산에는 금이 많았는지 일제때부터 금을 캤다고합니다
산골짜기 촌동네에 일제때부터 전기가 들어왔다니 어찌 놀라지 않을수 있을까요
해방되어 일인들은 물러가고 80년대에 대구의 모 학교재단이 이곳 두승산의 금광을 다시 개발하게 되었습니다
인근의 수많은 농민들이 취직하여 짭짤한 수입을 올렸고 고향을 못잊고 서울에서 방황하던 저도 이곳에 자리를 잡는 계기가되었습니다
기계실은 75마력 콤프레셔와 100마력의 콤프레셔를 가동하여 수백미터 지하에 공기를 공급하였습니다. 고압공기로 착암기를 돌리고 산소를 공급해야 광부들이 숨을 쉴수 있으므로 콤프레셔는 잠시도 쉬지않고 돌아갔습니다
정전에 대비하여 발전기의 가동법도 익혀두고....
금광은 온통 화강암으로 이루어져있어 거의 갱목을 받치지않고 작업을 합니다
내부에는 버스를 돌릴만한 공간도 있었지만 역시 갱목은 필요치않은 것을 보고 놀랄수밖에 없었지요
그렇지만 바위속은 춥더군요
천장에서 끊임없이 떨어지는 물때문이었는지 모릅니다
그렇게 모아지는 지하수도 퍼내야 하므로 양수기만을 전담하는 기능공이 따로 있었습니다
기념품으로 간직하고 있는 금광석입니다
금이 많은 것처럼 보이지만 노란금속의 대부분은 "황철광"이라고합니다
지금은 폐광된 금광
금광을 따라온 많은 기술자들이 다시 어디엔가에 있는 금광을 찾아 떠나고
마을엔 원래의 농민들만 남았습니다
지하에는 수십킬로미터의 거미줄같은 미로를 남기고 그 미로엔 이제 더이상 양수기를 가동하지않으니 물이 가득 들어있겠지요
우리는 여러가지 방법으로 두승산아래 지하에 거미줄처럼 뻗어있는 그 미로와
거기에 들어차있는 지하수의 오염을 강조하였습니다
골프장에서 쓰는 농약은 곧 지하로 흘러들어가고 그 미로를 통하여 오염은 금새 확산될테니 식수와 농업용수를 지하수에 의존하는 이곳의 현실을 호소하였습니다
골프장사업주가 포기했는지는 아직 모르겠지만
그는 느꼈을것입니다
세상이 옛날처럼 그리 호락호락 하지않게 되었다는 사실을.....
타지에서 온 지 얼마안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이장으로 뽑아준 주민들을 배반하고 대부분이 반대하는 골프장을 대부분이 찬성한다는 허위사실을 공증하여 법원에 제출한 배은망덕한 인간....
그리고 태어나고 자란 고향,주민들을 배반하고 그의 편에서서 허위공증에 참여한 서너명...
골프장을 반대한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증명하기 위해 모두 각자의 주민등록 등본을 떼어 법원에 제출하자는 기지앞에서 그들은 얼굴을 들고 다닐수 없게되었습니다
하지만 사실은 그들도 피해자일것입니다
사업주는 상고하지말고 포기하면 얼마나 좋을까요
며칠전엔 두승산에 토석채취장을 허가받으려는 사람들이 달라붙어 또 시끄럽습니다
제발 좀 산을 그냥 놔두면 좋을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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