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용실 아줌마
- 작성자
- 이린아빠
- 등록일
- 2011-04-03 05:58:04
- 조회수
- 4,544
미용실 아줌마는 한 지역에서 오랫동안 일하신 분입니다. 25년쯤 되신 듯 하더군요.
그렇다보니 마을 사람들의 근황을 다 알고 계신다고 볼 수 있습니다. 지역의 정보통 같은 생각이 들
정도이지요. 머리 자르는 5~10여분 남짓한 시간 동안 그분께 이런저런 질문을 하면 얻을 수 있는 유익한
정보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분은 아무래도 지역유지(?)에 가까우신 분이다보니, 부동산 및 상가 정보, 유치원,
학교 동향, 기타 여러가지 이야기가 술술 나옵니다.
저는 사람들을 만나면 제 이야기를 하기보다는 남들의 이야기를 듣는 것을 선호하는 편입니다.
누구에게서나 배울 점이 있거든요. 개개인의 삶의 경험이 다 다르기에 그렇습니다. 저와는 다른 관점에서
이야기를 듣다보면 아이디어도 생기고, 또다른 기회를 얻기도 합니다. 무엇보다도 그런 과정을 통해서
삶에 대한 이해의 폭이 깊고 넓어진다는 장점이 있죠.
얼마전에는 침과 뜸에 대해서 좀 아시냐고 물어봤습니다. (제 관심사가 요즘 침과 뜸입니다.)
그랬더니 술술술 이야기가 나오더군요. 수지침 이야기도 나오고, 관심이 있으시면 침 공부를 하시면
잘하실 듯 하다고도 그러시고. 예전에 발목이 삐끗해서 찾아간 침 잘놓으시는 분이 있는데, 침 놓자마자
한방에 나았다고. 나중에 또 어디가 아파서 한의원에 가서 침을 맞았는데 별로 차도가 없어서 다시 그분을
찾아갔는데 또 침 한번에 나았다고 그러시더군요. 중국에 몇년간 가서 유학도 하고 오신 분이라고.
그러던차에 돌 지난 제 셋째가 독감이 심하게 들었습니다. 집에 애기봐주시는 분이 감기가 걸렸는데, 그분께
옮은 것 같더군요. 첫째, 둘째는 로얄젤리를 매일같이 프로폴리스에 곁들여서 먹였는데, 셋째는 로얄젤리
먹이는게 상대적으로 힘들어서 최근에 거의 안먹인게 원인인 듯 싶었습니다. 누런 콧물이 줄줄, 기침을
심하게 하더군요. 뒤늦게나마 프로폴리스 희석액 먹이고, 로얄젤리 먹였지만, 쉽게 나을 듯해보이지 않았습니다.
구당 김남수 선생님의 책에 보면 등에 있는 신주, 풍문, 폐유 혈에 뜸을 놓으면 감기 쉽게 낫는다고 해서,
혈자리를 찾아봤지만, 아직 생초보인지라 눌러봐도 잘 감이 안오더군요. 그리고 마눌님이 아기한테 뜸
놓지말라고 신신당부하더군요. 그러던 차에 문득 미용실 아줌마가 생각이 났습니다. 다음날 아침에 전화를
해서 침 잘놓으시는 분의 연락처를 알아내서 전화를 드렸습니다. 그날 오후에 약속을 잡고 오후휴가를 내고
찾아뵈었습니다. 가기 전에 마눌님에게 간다고 문자보냈더니 거의 펄펄 뛰더군요. 감기 걸린애한테 무슨
침이냐면서, 빨리 병원이나 가라고 그럽니다.
70대 할아버지셨습니다. 어수룩해보이는. 전혀 침 잘하시는 분같은 인상이 아니었습니다.
미용실 아줌마가 누구 소개로 왔다고 말씀드리리고 하셨기에, 전화상으로 그분 소개로 찾아뵙겠다고 했었고,
만나뵈었더니 다시 물어보시더군요. 사실은 그분 사모님께 소개받았다고. 아기 감기 때문에 왔다고
말씀드렸더니, 그러면 빨리 소아과를 가야지 왜 자기한테 왔냐고 하시더군요. 아기는 병의 진행 속도가
빨라서 시간이 중요하다고 하시면서. 어른이랑 어린아이랑은 다르다면서 나무라시더군요. 왜 왔냐고
계속 물어보셨습니다. 잘못하면 백일해가 될수도 있다고 겁도 주시면서. 미용실 아주머님이 그 남편분과
함께 수지침의 대가이고 30년 경력인데, 본인들이 고치지 왜 자기한테 보냈냐고 그러시더군요. 집에 가면
수지침 책이 책장 한 면을 가득 메우고 있다며. 띵~~ 미용실 아줌마가 수지침 살짝 말씀하신게 설마
이유가 있었군..전혀 눈치 못챘었는데..
저는 좀 당황스러웠습니다. 이건 무슨 시츄에이션이람... 침 안놓고 돌아가야될 분위기..
제가 전공이 화학이라 약이 얼마나 안좋은지 알고있고, 약을 쓰기 싫어서 선생님 찾아뵈었다고 말씀드렸더니
그제서야 경계(?)를 푸시더군요. 그러냐고. 그렇다면 알겠다고. 침술이 현행법상 불법이기에 1000명 잘
고쳐주고도 한명 잘못해서 고발당해서 잘못되신 분들이 한두분이 아니기에 그분도 초반에 경계를 늦추지
않으셨던 거죠.
바로 서재로 들어가셔서 침을 갖고 오시더니 아이의 발과 팔에 침을 놓으시더군요. 아주 능숙하고 빠른 손놀림으로.
그걸 보고 제 눈이 동그래졌습니다. 말문이 막히더군요. 고수이셨습니다. 외모만 가지고는 전혀
알 수가 없었죠. 저도 갑상선을 포함해서 여기저기 안좋다고 말씀드렸더니 손으로 갑상선 부위를
직접 만져보시더군요. 여기서 또 놀랐죠. 눌러보는게 그냥 눌러보는게 아니더라는 거였습니다. 정확히
포인트 포인트를 찾아가면서 상태를 진단하시는 게 느껴졌습니다. 갑상선 전문의가 만져보는 듯하였습니다.
양말을 벗으라고 하시더군요. 발안쪽 옆에 한방 놓으시고, 손목 쪽에도 하나 놔주십니다. 손목은 거의 수평에
가까운 각도로 깊숙히 찌르시더군요.
하시는 말씀이 자기는 무식해서 침 많이 놓지 못하고 보통 두 번 놓으신다고 합니다. 경우에 따라 보조적으로
하나 더 놓을 때도 있다고. 30분동안 유침한 다음에 빼겠다고 하십니다.
아이한테 침을 놓은지 20분쯤 지났나요. 베이비시터 품에 안겨서 한참 울던 아이가 쌔근쌔근 잠이 들었습니다.
30분이 되어서 침을 뺐고, 아이 얼굴이 병색이 가득했었는데, 빛이 날 정도로 화색이 완연해졌습니다. 한눈에
봐도 이제 살았구나 라는 게 보였습니다.
한편, 저도 침 맞은지 15분쯤 되니까 침맞은 부위에서 저릿한 느낌이 계속 커지더니 20분 쯤 넘어가니까
몸 전체에 기감이 퍼지기 시작합니다. 30분쯤 되니까 마치 뽕맞은 듯한 느낌이 들 정도로 전신의 에너지
순환이 아주 좋아졌음이 느껴졌습니다. 마치 예전에 한창 의식수련 잘될 때의 상태가 다시 돌아온 듯하였습니다.
참고로 말씀드리자면, 수련이 잘될 때, 몸의 느낌은 경우에 따라 말초적 성적 쾌감을 능가합니다. 이건
느껴보신 분들은 압니다. 차원이 다르죠. 성적 극치감은 그다지 오래가지 않죠. 남자는 한 10초쯤 되려나요.
여자는 파도치며 오르락 내리락 느껴지는 쾌감이 길게 봐도 최대 30분?? 그런데 수련을 통해서 몸이
활성화가 되면 전신에 골고루 퍼진 쾌감이 몇시간 이상도 지속됩니다. 이 맛에 수련하는거죠. 반면에
거꾸로 이 느낌이 어느순간 사라지면서 사람들이 많이들 방황하곤 하죠. (느낌 찾다가 망한 사람들 부지기수죠 ^^)
침을 뺀 상태에서도 그 느낌이 계속 고조됩니다. 척추에서 등골을 타고 정수리 쪽으로 통하는 기의 흐름의
느낌이 너무 좋습니다. 황홀하더군요. 침 두방에 이렇게 온몸이 자르르 하다니... 놀라웠습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어느새 아이가 깨서 환하게 웃고 있습니다. 열도 내렸고, 콧물도 멈추었습니다.
병원 갔으면 아마도 5종 약세트에 잘하면 항생제도 받아왔을 터인데 역시 이분께 침 맞으러 오기
잘했다라는 생각이 다시 들었습니다. 베이비시터도 처음에 말은 하지 않았지만 왠 침이냐..라는 듯
하였었는데, 아기 침맞고 난 다음에 보니 생각이 달라졌나 봅니다. 같이 좋아하는군요.
다음날 병원 예약도 해놨으나 아기 상태를 보니 안가도 될 정도로 좋아졌고, 하루 지나서는 완전히
나았습니다.
아기 엄마도 놀랐습니다. 침으로 독감까지 낫게할 줄은 자기도 몰랐다며, 침 잘놓으시는 가까운 친지분의
사모님도 감기 걸리면 오래 가셨기에 감기는 어쩔 수 없다보다라는 생각했었기에 더 놀라웠나 봅니다.
침을 놔주신 박선생님께 여쭤봤습니다. 침 공부를 하고 싶은데 어떻게 시작하면 될까요.
왜 배우려고 하느냐. 자기는 제자를 두지 않았다. 이거 해서 뭐하느냐 해봤자 음지에서 해야하고
범법자 만드는 것 밖에 더 되느냐. 우리나라 한의사 집단이 어떤 사람들인데. 절대 침구사법 부활
안된다. 자기는 정말 힘들게 오랫동안 공부 계속 하면서 그래도 침구사법이 부활될 거라는 희망을
가지고 했는데, 결국 안되었다. 앞으로도 안될거다. 고개를 절래절래 흔드시더군요. 그러면서도 후회는
없다고 하십니다. 최소한 가족들 건강은 봐줬으니까 그걸로 만족한다고 하시면서.
그래도 공부를 하겠다면 침구부터 하지 마라. 기초가 중요하다. 기초가 없으면 사상누각일 뿐이다.
<해부, 생리, 병리, 진단, 위생> 이것부터 공부를 하라고 하십니다. 주역등을 포함한 동양철학을 알아야
한다고. 말씀하시는 것을 보니 정말 많고도 많은 공부를 하셨더군요. 제가 명리학(사주) 공부를 했다고하니
무슨 명리학을 했느냐, 육임, 육효 다 알고 계시더군요. 후아...
이런저런 수련해봤다고 말씀드렸더니, 그거 중요한거라고 하시면서 서재에 가서 한자로 되어 있는 중국
기공책을 한번 보라고 하시더군요. 봐도 모르겠더군요. 한자를 잘 모르니. 기껏해야 대학입시 한자
수준으로는 안되겠더군요. 완전 중국책이니. 한자를 알아야 한다고 하십니다.
앞으로도 종종 찾아뵙고 싶다고 말씀드렸고, 또 오라고 하시더군요. 올때마다 침 두방은 놔줄 수 있다고..
자기는 무식해서 침 많이 못놓는다고 ^^
나오면서 제 몸 상태도 너무 좋고, 아이가 화색 가득히 맑게 웃는 모습과 콧물 멈춘 것을 보니 참 기분이
좋으면서도 한편으로 안타까운 마음도 많았습니다. 인술이 상술로 변질되어 환자의 치료보다 어떻게 하면
자기 밥그릇을 지킬까에 급급한 우리나라 의사 집단들. 이런 나라는 전세계에 우리나라 밖에 없다고
일갈하시는 박할아버님, 중국에서는 양의, 한의, 침구, 모든 의료진들이 협업을 해서 가장 환자에게 빠르고
효과적인 치료법이 무얼까를 고민해서 치료한다고 합니다. 우리나라처럼 양의따로, 한의따로, 침구 말살하는
나라는 오직 한국 뿐이라면서 한맺힌 듯 말씀하시더군요.
참 슬펐습니다.. 이런 재야의 실력자들이 서서히 세상을 뜨시고 나면 누가 그 명맥을 이어갈까 하는
생각에 우리나라 위정자들과 기득권자들에게 분노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분 살아계실 때 자주 찾아뵈어 많은 것을 배워서 가족과 주변 지인들에게 도움을 주고 싶습니다.
그리고 이분과의 인연을 만들어주신(?) 미용실 아줌마에게도 참 고맙다는 생각이 듭니다. 세상의
모든 인연과 만남 다 소중하게 대하면 오늘의 이런 복도 굴러오는 듯 합니다.
댓글목록
운영자님의 댓글
저도 대체로 남의 이야기를 듣는 편이거든요
어떤 사람이든지 그가 겪어온 삶에는 지혜가 쌓여있다고 믿고 각자가 살아온 환경과 경험한 분야가 다르기때문입니다
노인들의 이야기를 듣다보면 한가지라도 더 알려주고 싶어 하시는 것을 볼수있고
모두 다 남기지 못하고 가게됨을 안타까워하는 것을 알수도 있더군요
더구나 아마도 평생 배우고 익혔을 침술, 자기의 이익만을 위해 배운게 아닐텐데 그걸 마음대로 펼치지 못하는 답답함을 어찌 다 표현할수 있을까요
님같은 분이라도 자주 만나서 맥이 끊어지지않도록 하는게 아마도 그분의 소망일거라는 생각도 듭니다
아직은 너무도 답답한 대한민국....
자기의 이익을 위해 남의 생명을 담보로 하는 일들은 언제쯤이나 없어질지...
아마도 스스로 정화가 안되는 인류를 위해 대재앙이 자주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소중하신 할아버지께 저도 작은 선물하나 보내드릴께요~
이건기님의 댓글